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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Dec 24. 2021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6-7살 무렵, 막내 삼촌이 결혼을 하며 작은엄마가 생겼다.

당시 막내 삼촌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일손을 도우러 온 가족이 종종 과수원에 가곤 했다.


그날도 온 가족이 과수원에 모였고 작은엄마는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셨다. 나는 작은엄마 옆에서 반찬 접시를 나르며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손이 미끄러웠는지 그만 바닥에 접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은 모두 쏟아지고 접시는 깨져버렸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친 데는 없니? 음식은 다시 담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있던 나에게 달려온 작은엄마는 당황한 나를 달래주시며 얼른 자리를 수습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다시 식사 준비를 하셨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는 다른 어른들의 핀잔에도 연신 "그럴 수도 있지~!"라며, 어린 나를 다독이던 작은엄마가 몹시도 고마웠다.


이 사건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던지, 어린 시절 생각나는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만약 우리 집에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면 커다란 꾸지람이 뒤따랐을 것이다. 도움을 주려던 고사리손의 마음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그저 조심성 없이 사고만 치는 부끄러운 손이 되었을게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놀랍도록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이 말을 들으면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꽁해있던 마음이 풀리고, 나에게도 또 타인에게도 여유가 생겨 너그러워지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의도치 않게 실수를 했을 때 마음을 가다듬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란 거 알아. 누구나 실수는 하지."하고 말을 건네면, 이후 상황은 꼬인데 없이 술술 풀린다.


사실 그 상황에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를 앞에 두고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서로에게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옆에서 다그치치 않아도, 일단 이해의 말을 들은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이야기하며  죄송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한다.






요즘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의 의미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덕분에 어린 시절을 한 번 더 경험하는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내가 원했던 모습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아침에 깨울 때는 부드럽게 얼굴과 손을 어루만지며 평온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돕는다. 언제나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실수에 대해서는 크게 다그치지 않는다. 일상과 고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며 마음을 담은 편지도 자주 쓴다.


이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종종 엄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그럴 때면 일단은 속이 상하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우리 엄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무척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뚝뚝하기만 한 엄마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엄마의 입장을 조금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지난 10년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로부터 진정한, 순수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설사 엄마가 실수하거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도) 믿어주고 의지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 덕분에, 상처 받은 어린 내 영혼이 치유됨을 느낀다. 왠지 모르게 늘 주눅 들고 작아지던 내 마음은, 이 어린 두 아이 덕분에 좀 더 당당하고 충만해진다.




아이들이 만든 미술작품을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거나,  의도치 않게 아이들을 속상하게 할 때가 있다.

나름 소중했던 것이었는지, 아이들은 한껏 속이 상해 원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어머! 미안해! 소중한 건지 몰랐어. 물어보고 버릴걸 그랬네." 라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건네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 아이들은 이내 굳은 얼굴을 풀며 "에효, 실수잖아요. 괜찮아요 엄마. 다시 만들면 돼요." 하고 말해준다.


아이에게 듣는 이 말은 더욱 감동이다.

타인의 실수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아이라니, 너무 멋진 거 아닌가.

아이들이 타인의 '작은 실수'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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