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번 정도 친정에 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엄마와 함께 온천에 간다. 뜨거운 물에 함께 몸을 담그고 무심히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릴 때 얘기 좀 해줘”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엄마는 이내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가난한 시골에서 늙은 부모님의 12번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나 보니 이미 큰 이모는 시집가고 없었다 하니 진짜 막둥이였던 것이다.
시집간 큰 이모가 집에 놀러 오자, 아이를 낳은 것이 창피했던 할머니는 엄마를 이불에 둘둘 말아 건넛방에 감추어 두었고 작은 이모가 갓 태어난 엄마를 돌봐주었다고 한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할아버지가 지게에 엄마를 태워 데리고 다녔다. 엄마는 흰머리에 수염이 숭숭 난 늙은 할아버지가 너무나 창피했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몇 년 다니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집이 너무 가난해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고 결국 엄마는 국민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큰외삼촌이 결혼을 하고 월남에 파병을 가 있는 동안 외숙모는 엄마를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며 데리고 갔다. 하지만 약속과 다르게 외숙모는 중학교도 보내주지 않고 자기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
집에 전화도 없어 제대로 연락도 못하던 그 시절, 어린 딸을 보내 놓고 걱정이 된 외할머니는 물어물어 어렵게 큰외삼촌 집을 찾아왔다. 그곳에서 학교는커녕 집안일에 아이 돌보는 일까지 하며 말 그대로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는 그 길로 엄마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전히 가난했던 집에서 뭐라도 하며 먹고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미용학원에 등록해 미용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일하며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엄마가 겪은 일들이다.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힘겹게 살아온 세월이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엄마는 “그땐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았어”라며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내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아 몰랐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늘 내 엄마로만 존재했을 뿐이었으니까. 엄마로서 나에게 해줘야 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쏟았다. 엄마가 이겨내야 했던 삶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내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척 낯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