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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Sep 17. 2021

이번 추석에 집에 가시나요?

"그래, 어떻게...... 이번 추석엔 집에 올 거니?"

"음, 글쎄요...... 아직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했어요!"


"......"

"......"


"그래, 알았다...... 근데 우린 백신 다 맞았어! 요새 여긴 확진자도 많이 안 나와."

"다행이다. 여긴 아직 너무 많이 나와서 걱정이에요. 오늘 애 학교에도 확진자 나와서 일찍 하교했어요."


"언제쯤 좋아질는지, 나원참!"


이번 추석에도 집에 안 갈지 모른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흔쾌히 가겠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도 덩달아 가시방석입니다.




2020년 초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 우리 가족은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입니다.


원칙은 단 하나.

우리 네 식구 이외에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간단하지만 아주 강력한 기준입니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거든요.  

시댁도, 친정도, 오빠네 가족들과도 예외는 없었고, 당연히 이웃과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도시락을 챙겨 혼자 원장실에서 점심을 먹고, 초등학생 자녀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않고 돌아옵니다.

아, 유치원생 자녀는 점심을 먹고 오네요. (이것 때문에 작년에는 결국 유치원을 그만뒀었고, 올해 다시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


작년, 엄마의 환갑에도 가족들이 모이지 않고 화상전화를 켜 둔 채 각자 집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작년 추석에는 각자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올해 설날에는  시간 넘게 차를 몰고 시댁과 친정에 들러 새배만 하고 돌아왔었네요.


외식, 당연히 안했고요. 외출도 텃밭에 가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로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 물으신다면. 사실, 심각한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답하겠습니다. 처음 몇 달만 철저히 지키면 금세 상황이 좋아질 줄 알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남편이 면역력이 약한 노인분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라, 만에 하나라도 뉴스에 나올만한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제 주변에는 이 정도로 철저하게 만남을 자제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저는 유별나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각인되어버린 듯합니다.

수 많은 만남 요청에 모두 거절로 답을 했거든요.

저도 제가 좀 답답하고 매정하게 느껴지지만, 주변 사람들의 실망하는 눈빛과 목소리를 들으면 외롭고 속상해집니다.


그나마 남편은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저도 1차까지 백신 접종을 마친 상황이라, 앞으로 점점 상황이 나아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이렇게 부모님께서 자식들을 보고 싶어 하시고 서운해하실 때, 흔쾌히 찾아뵙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댁에 안 가는 것으로 거의 결론을 내고 있었는데요. 오늘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부모님 건강이 좋지 않아 애달파하는 자녀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님 건강하실 때 자주 찾아뵈어야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2년 가까이 손주들 자라는 모습을 못 보신 부모님은,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깜짝 놀라세요. 언제 이리 컸냐며……


추석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좀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저도 정말 즐겁고 따뜻한 시간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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