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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20. 2021

옥탑방에 살던 시절에 대하여

도시는 너무 쉽게 죄의식을 생산해 냈고, 비빌 곳 없는 지방 출신들은 너무 쉽게 그 생산물을 소비했다.

지하, 반지하, 옥탑......

사회 초년생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아주 아래거나 아예 위였다.

습기와 추위나 더위에 무방비 상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中



고등학교 3학년, 독립에 대한 욕구가 컸다.

대학은 꼭 서울로 가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스무 살,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독립생활의 첫 집은 학교 앞 단독주택의 여성전용 하숙집이었다.

한 달 비용이 40-45만 원이었고 세 끼 밥이 제공되었다.

딸이 타지에서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길 바랐던 아빠의 마음이었다.

20년 전 물가로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비용이었을 텐데, 아빠는 2년간 꼬박 하숙비를 지불해 주셨다.

한 학기에 100만 원 남짓했던 학비를 생각해보면, 하숙비 덕분에 내 생활비는 꽤 높은 편이었다.

아낀다고 아껴도,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머지 2년은, 학교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한 학사(기숙사)에서 지냈다.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 다행이었다.


졸업 후 첫 직장은 잠실에 위치했다.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자취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예산에 맞추려다 보니, 잠실부터 시작해 정확히 8호선 라인을 따라 조금씩 내려오다 결국 성남까지 내려왔다.


성남의 구시가지는 굉장히 복잡했고, 무엇보다 경사가 심했다.

살면서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길은 처음 보았다.

부동산에 들러 여러 집을 둘러보았다.

예산에 맞는 집은 차마 들어가 살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가까스로 가파른 경사 꼭대기에 위치한 집의 옥탑방을 찾아냈다.

보증금 얼마에 월세 25만 원짜리 방이었다.

주방과 방의 경계가 없는 아주 널찍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빛이 잘 들어 밝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집으로 이사를 한 날, 침대와 책상 냉장고를 들여놓았고 부모님께서 하룻밤 주무시고 내려가셨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혼자라는 기분이 꽤 낯설었다.


근방에서 내 방이 제일 높았기에 야경이 아주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던 그곳.

나는 종종 옥상에 나가 캔맥주를 마시곤 했다.


출근을 위해 예쁜 옷에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까지 가려면 경사가 45도는 돼 보이는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엉거주춤한 포즈로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평지에 다다르면 아무리 조심해도 구두굽이나 구두코가 조금씩 까이곤 했다.


살면서 가장 검소하게 살았던 시기였다. 월급을 받아 월세와 각종 공과금, 교통비와 최소한의 식비를 제하면 소비할 돈이 없었다.

본가에서 살며 여유로워 보이는 동료들의 편안한 미소가 몹시도 부러웠다.

함께 웃고 떠들며 동질감을 느끼다가도, 퇴근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그들과 나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 더욱 외롭고 작아졌다.


큰 도시에서,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청춘이었다.

기를 쓰고 노력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동안 마음이 쓰렸다.


첫 회사의 업무와 동료들 선배들까지 모두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월급이 문제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끼고만 살아야 하나?

적은 월급은 곧 나를 퇴사로 이끌었다.


간곡하게 퇴사를 만류하던 선배에게, 이 월급으로는 생활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자취생은 나 하나였다.

결혼했던 선배들은 모두 남편이 경제적 책임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동료들은 본가가 서울이라 다들 부모님 댁에서 생활했었다.


업계에서 월급이 그나마 좋았던 회사로 이직한 뒤, 집도 홍대 근처 투룸으로 이사했다.


역시 월세였기에 돈은 여전히 슝슝 빠져나갔으나, 평지에 위치한 2층의 그 집은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20대, 독립에 대한 로망은 실현했지만 10년간의 홀로 살이에서 많은 생채기를 얻었다. 그렇게 상처 입고 아물고를 반복하며, 더 단단해진 나를 느낀다.

지나고 보면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는데, 지독히도 외로워하던 그 시절의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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