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검증을 받은 책
사람이 평생 보는 책의 수가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적게는 몇 십 권 읽고 죽는 경우도 있겠고, 심지어 한 권도 읽지 않고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많게는? 기껏해야 몇 천권 규모가 아닐까 싶다. 매년 100권씩―실제로 이렇게 읽는 경우도 흔하진 않다―60년 동안 읽는다 해도 6천 권에 불과하다. 인간의 평생 독서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대량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되도록 좋은 책을 읽는 데 시간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좋지 않은 책을 읽는 데 시간을 쓴다면 그만큼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잃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그것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만한 일화가 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이자 컬럼비아 대학 영문과 교수인 레이몬드 위버에게 한 여대생이 책 한권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교수님, 이거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인데 읽어보셨어요?”
“처음 보는 책인데?”
“어머, 출판된 지 3달이나 된 책인데 모르세요? 빨리 읽어보세요.”
이번에는 위버 교수가 물었다.
“자네는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았나?”
“아뇨, 아직이요.”
“쯧쯧, 그 책은 나온 지가 6백년이 넘었으니 빨리 읽어보게.”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온 책은 좋은 책이 틀림없다. 한 세대는 잘못 볼 수 있어도 인류는 결코 잘못 보지 않는다.” 위 일화의 메시지 역시 시간의 검증을 받은 책을 보라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대개 발간된 지 얼마 안 된 신간이고, ‘일시적으로 인기 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직 초급 독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적 욕구에 기반한 독서가 아니며,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 독서이다.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 극복하기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들이 있다. 첫째,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읽어야 할 책들이 끊임없이 앞에 쌓이게 된다. 독서 트렌드는 끊임없이 바뀌고, 그에 따라 읽어야 할 책들은 항상 대기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노력에 비해 성취가 적다. 외부의 자극에 의한 독서를 반복되면 독서가 지루해진다. 자기 내적 욕구에 기반한 독서가 아니므로 열정적인 독서가 되지 않고, 얻는 것도 적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기 쉽다. 셋째, 쉬운 책만 보게 됨으로써 지적 발전이 더디다. 베스트셀러는 대체로 쉽게 쓰여져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만큼 읽었다’는 양적 만족을 주기 쉽다. 그러나 그 단계를 벗어날 때가 되었는데도 계속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를 한다면 지적 발전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지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더 어려운 책에 도전해나갈 필요가 있다.
시간의 검증을 받은 대표적인 책은 단연 ‘고전’이다. 고전(古典)은 말 그대로 ‘옛 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트렌드에 뒤진 책이 아니라 트렌드를 뛰어넘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고전들은 대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답함으로써 세월의 풍화를 견뎌왔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일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인데, 많은 지식인들이 ‘고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지적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고전의 내용을 모른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논의에 끼어들기도 힘들다. 그래서 고전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지적 도약은 세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내적 욕구를 잘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책을 읽을 때이다. 이 때, 사람들은 독서가 주는 지적 희열을 맛보게 되고, 그에 따라 열정적으로 독서하게 됨으로써 최초의 지적 도약을 이루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또 하나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주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이다. 이를 기점으로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의를 모두 이해하는 지적 도약을 이루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독립적인 연구와 조사, 분석가 종합을 통해 여러 지적 논의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이다. 이것이 지성인으로 진입하는 단계이다.
고전이 어려운 이유
고전을 읽으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고전을 읽기란 쉽지 않다. 그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전은 왜 어려울까? 일반적으로 책은 외국인이 쓴 것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나와 같은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 사람이 쓴 것보다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즉 현재 생존해있는 사람이 쓴 것이 훨씬 쉽다. 그런데 고전은 그 반대이다.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책 중에는 외국, 그 중에서도 서양의 것이 많다. 게다가 옛날 책이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우리와 동떨어진 지적 산물이라는 말이다.
만약 백인이 우리나라의 최치원이나 퇴계 이황이 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양의 고전을 읽는 것이 이렇다. 고전이 아무리 근본적인 것을 묻고 답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필자가 속한 시공간적 특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사회와 문화,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야 고전이 비로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이 지적 성장 과정에서 갖는 지위는 이중적이다. 고전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독서의 종착역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전은 지적 산물의 전범(典範)이다. 지적인 존재로 살려는 많은 사람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나도 이런 정신을 소유할 수 있었으면’하고 바란다. 고전은 지성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도달해야 할 정신적 높이를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전은 지적 여정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전은 지적 여정의 기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여러 가지 지적 논의를 전개할 때, 고전의 내용을 논의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전을 인용하거나, 그 내용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나간다. 그들은 고전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지배적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할 때에도 낡은 관념의 토대로써 고전을 인용한다. 그런 까닭에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지식인들의 지적 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고전은 지적 여정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고전은 지적 여정의 목표이자 기반이라는 이중의 지위를 갖는다.
지성인이 되는 데 있어서 고전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그러므로 고전에 늘 관심을 갖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전에 대한 이해가 확립되면, 무관심했던 지적 논의, 관심을 가지려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지적 논의들의 의미와 중요성이 돌연 인식되기 시작한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가 자세히 보이면서,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일종의 개안(開眼)이자 신세계로의 진입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