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와 도박이 되어가는 정치

by 글맛공방



우리나라는 먹고살기가 녹록한 나라는 아니다. 사실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제도 교육도 문제다. 학교에서 다른 건 다 가르쳐도 정치만은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만연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언론의 정치 혐오가 잘 먹혀들어간다. 안 그래도 정치를 잘 모르는데, 언론이 정치 혐오를 조장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정치 혐오는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 정치 혐오가 지배적인 문화가 되면,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진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정치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민주주의는 더 잘 작동되고, 수준이 낮을수록 민주주의 구현은 힘들어진다. 정치의식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치 혐오는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적 학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든다.

정치 혐오는 투표율도 낮춘다. 투표율이 낮다는 것은 정당 지지 성향이 확고한 사람 아니면 잘 투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정당들은 기존의 ‘콘크리트 지지층’에게만 ‘구애’하게 된다. 그것이 손쉬운 승리를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보궐선거 같은 경우에는 투표율이 20~3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 같은 전략이 매우 주효하다.

정치 혐오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또 있다. 우리가 간혹 접하는 현상인데,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대선 주자로 떠오르는 것이다. 정치 혐오가 심해지면, 사람들은 정치권 안에 있는 사람보다 정치권 밖에 있는 인물을 기존 정치인보다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다.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록 대중의 지지를 받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전의 안철수가 그랬고,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그랬으며, 지금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그렇다. 정치 혐오는 대선을 일종의 도박판처럼 만든다.

-졸저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에서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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