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어느 마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고급 승용차에 속에서,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아는 이가 보이면 창을 열고 손을 흔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기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이제 마을을 벗어나 최신식 건물에서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며, 침대에서 잠들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식사를 제공하고, 청소까지 해주는 곳, 그곳으로 갑니다. 이 모든 것이 종이 한 장에 이름을 적고 기다린 결과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인체실험의 샘플이 된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남아프리카는 대표적인 인체실험 대상 국가입니다. 극빈층인 아프리카 토착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보다 나은 환경을 누리기 위해 임상시험에 지원합니다. 이 땅은 문자 그대로 지원자가 넘쳐나는 샘플 수집소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실험에 지원하는지, 무슨 약물을 투여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지원한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뿐, 효과나 실험 후 치료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와 같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몸을 팔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원으로 혹은 정부의 주도로 사람의 신체가 선진국에서 개발한 신약의 효과를 검증할 샘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의약품의 개발에 있어, 실험대상을 인간으로 삼는 것이지요.
약품의 화학적 구조연구와 같은 1차 이론검증이 끝나면, 2차 동물 실험, 마지막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이후 변화의 추이를 관찰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험군과 대조군이 존재합니다. 실험군은 실제 약물을 투여한 그룹, 대조군에는 위약, 예를 들어 기존의 병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설탕이나 비타민제 같은 것들을 처방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들은 자신이 진짜 약물을 받았는지, 위약을 받았는지 몰라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각 그룹의 변화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파악하는 구조이지요.
유의미한 차이는 말 그대로 ‘의미 있는 차이’를 말하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대상에 비해 약을 투여한 그룹의 변화가 가시적 통계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실험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나 경영진은 실험의 성공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제약회사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한 오염되지 않은 샘플을 얻어야 합니다. 약품이 목적하는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당 질병에 대해 별다른 처치를 받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이들을 ‘수퍼바디’로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수퍼바디’ 환자는 선진국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빠르게 처치를 받거나 이미 출시된 유사 의약품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약회사가 원하는 ‘수퍼바디’가 많은 곳이 바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입니다. 이들은 병에 걸려도 처치를 받을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픔을 견디며 지내거나 민간요법에 의지합니다. 거대 제약회사는 이들을 신규 의약품의 효과 실험에 적합한 샘플로 취급합니다.
이 과정에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임상시험수탁기관)가 개입합니다. 이들은 거대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과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하여 위탁하는 아웃소싱 기관들입니다. CRO는 자신들이 개도국 또는 후진국 등에서 확보한 지원자의 명단, 즉 인체풀을 자랑스럽게 광고하며 샘플을 판매합니다. 말 그대로 실험용 샘플로 인간을 판매하는 것이지요.
실험자원 계약서에 사인하는 이들의 태반이 문맹입니다. 그래서 계약의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계약서를 읽어주는 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개 정확히 읽어주지는 않습니다. 피험자들은 그저 좋은 시설에서 치료받는다는 믿음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지요. 운 좋게 실험군에 뽑혀, 요행히 효과 있는 약물을 처방받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설탕 정제를 삼키며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실험이 끝난 후, 실험 참가자 모두에게 병의 치료가 지원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대 제약회사들은 예산의 문제 또는 이미 실험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더 이상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태도입니다.
저자 소니아 샤는 『인체사냥』에서 거대 제약회사의 비윤리적 실험 관행을 비판합니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의 비윤리적 실험, 미국의 터스키기 실험과 같이 피험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신약개발의 치부를 드러내지요. 그녀는 뉘른베르크 강령의 첫 번째 원칙인 “인체 실험대상자들이 자신이 어떤 시술을 받을 것인지 알고서 참가하기로 동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의약품은 단지 일용품이 아니라 사회재이며, 의약품의 개발은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실로 남아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신약개발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인간에 대한 실험이 불가피하다면 그 안에서 최대한 바른길을 찾자고 외치는 것이지요.
인류의 건강과 삶을 책임지는 제약 관련 산업은 단순한 영리추구 사업이 아닌 공중보건의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계의 시민과 정부, 그리고 관련 비영리 단체 모두가 제약회사의 연구와 이익창출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의 몸을 이용한 실험으로 우리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 우리는 그만큼의 부채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가볍게 삼키는 진통제 한 알에도 많은 이들의 임상시험 같은 희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실험 이후에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무조건 보장해야 하고, 실험 전후의 보상 또한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노구(努口)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
* 이 글은 글맛공방의 '서평쓰기'를 수강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