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맛공방 Nov 12. 2020

놀이공원의 역사와 여가 문화

우리나라 놀이공원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놀이공원은 창경원이다. 1911년 일제에 의해 개장된 창경원은 본래 창경궁이었다. 일제는 왜 궁궐을 유원지로 만들었을까?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한제국의 국권과 황실의 권위를 능멸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환심을 사는 것. 실제로 궁궐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하게 된 사람들은 환호했다. 특히 1924년 시작된 밤 벚꽃놀이에는 경성시민의 10%가 다녀갈 만큼 성황이었다. 전차 타고 종로에 와 화신백화점을 본 뒤 창경원에 가는 것은 최고의 나들이 코스였다. 

창경궁을 유원지로 만든 사람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였다. 그는 막부 세력들을 타도한 후 천황중심의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미 도쿠가와 막부의 장군들 무덤과 사당이 있던 막부 권력의 성지 우에노(도쿄 도심에 위치)에 박물관과 동물원을 설치, 유원지로 만들어 옛 권력을 비웃은 경력이 있었다. 창경원도 마찬가지였다. 

창경원 다음으로 등장한 놀이공원은 1973년 개장한 어린이대공원이다. 이곳은 본래 순종의 비 순명황후의 능터였으나, 이장(移葬) 후 골프장으로 사용됐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놀이공원이 들어섰다. 동화실, 과학실, 동물원, 식물원, 인공 연못, 꽃시계, 분수대, 그리고 회전목마, 다람쥐통 등의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공원은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급하강시 무중력 상태의 짜릿한 스릴을 제공하는 청룡열차의 인기는 최고였다. 청룡열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롤러코스터였다.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용인 자연농원은 초기에는 말 그대로 ‘농원’이었다. 1976년에는 자연농원에서 기른 돼지고기 780톤을, 79년에는 살구넥타를 쿠웨이트에 수출했다. 자연농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사파리 월드’였다. 사파리는 사자, 호랑이, 곰 같은 맹수를 넓은 곳에 방생해놓고 관광객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관람하게 한 것이었다. 기존의 동물원은 동물이 갇혔지만, 사파리 월드는 사람이 버스 안에 갇혀 구경하는 구조였다. 버스를 타고 밀림처럼 조성된 공간에 들어가 눈 앞에서 맹수들을 구경하게 한 것은 획기적 발상이었다. 

자연농원은 1996년 개장 20주년을 맞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꾸었다. ‘에버랜드’는 피터팬의 나라 ‘네버랜드’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에버랜드는 테마파크를 넘어 워터파크, 눈썰매장, 숙박시설, 골프장 등을 갖춘 ‘리조트형 복합단지’였다. 에버랜드에서는 계절별로 ‘플라워 카니발’ ‘서머 스플래시’ ‘해피 핼러윈’ ‘크리스마스 판타지’ 등 테마 축제를 개최했다. 지금도 축제 기간에는 화려한 퍼레이드 및 레이저 쇼 등 크고 작은 공연이 하루 130여건 열린다.      


세계적인 놀이공원의 진화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은 1843년 8월 15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장된 ‘티볼리 공원’이다. 놀이공원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알제리 영사의 아들로, 어린 시절 대부분을 중동에서 보낸 게오르그 카르스텐센이었다. 어린 시절 동양의 신비에 도취되었던 그는 나중에 코펜하겐에서 잡지 발행인이 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된 그랜드 볼, 춤, 음악에 불꽃놀이를 곁들인 음악행사들에 구독자들을 초대함으로써 잡지를 홍보하곤 했다. 

사람들이 음악행사를 좋아하는 것을 본 그는 이런 행사가 상설로 열리는 음악공원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원 설립안을 들고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8세를 찾아갔다. 그러나 왕은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과 국내 폭동에 시달리던 때여서 공원 건립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에 카르스텐센은 “국민들이 즐거우면 정치 같은 것은 잊을 것”이라는 논리로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티볼리 공원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물, 야외 음악당, 극장, 식당, 카페, 꽃밭, 놀이기구를 갖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다. 저녁이 되면 색색의 전등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티볼리 공원은 디즈니랜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월트 디즈니는 1950, 60년대에 몇 차례나 이곳을 방문해 디즈니랜드 설립을 위한 영감을 얻어갔다. 그러나 만화영화 제작자였던 월트 디즈니가 만든 디즈니랜드가 대중을 현혹하는 데 있어서 훨씬 진일보한 것이었다. 

1955년 개장한 디즈니랜드의 컨셉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의 국가주의적 이상을 보여주는 것. 다른 하나는 디즈니 영화에서 구현된 환상의 세계를 실재처럼 구축하는 것. 월트 디즈니는 이 두 컨셉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1890년대의 미국 타운을 재현한 ‘메인스트리트 USA’를 중심으로 ‘모험의 나라’ ‘개척의 나라’ ‘환상의 나라’ ‘미래의 나라’ 등 동화적으로 구현해놓고, 그 안에서 열대 정글, 고대 신전, 서부 개척지, 증기선, 골드러시 등을 체험하면서 도날드 덕, 미키마우스,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캐릭터들을 만나게 해놓았다. 

디즈니랜드는 문화산업의 컨텐츠를 놀이공원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신기원이었다. 디즈니랜드에 열광한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어릴 때 TV와 영화를 통해 봤던 친숙한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추억이자 기쁨이었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영화 속 설정을 ‘체험’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디즈니랜드의 ‘제다이 학교’이다. 그곳에서는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복장을 한 직원이 광선검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 미국 올랜도에 위치한 ‘해리포터’ 테마 파크에서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3D 기법을 이용해 빗자루를 타고 날아볼 수 있다.       


놀이공원의 미래와 여가 문화

본래 ‘체험’은 실제상황을 한번 경험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다이 학교’나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의 체험은 ‘허구상황’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놀이공원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동원해 ‘환상의 실제적 체험’, ‘간접 경험의 직접 경험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 소스를 제공하는 것은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에 기반한 놀이공원의 체험은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컨텐츠로 여러 상품 유형을 만드는 것)’의 전형이다. 

놀이공원도 수출된다. 미국의 월트디즈니사나 유니버설 영화사 같은 미디어 그룹은 자신의 세계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놀이공원을 각국에 건설하고 있다. 디즈니랜드는 이미 일본, 파리, 홍콩에 건설되어 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일본, 싱가포르에 건설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건설이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경제적 실익만 있다면, ‘문화적 굴욕’ 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 일반적이다.  

현대의 부모는 돈 버느라 자녀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자녀들과 집약적으로, 속도전으로 놀아줘야 한다. 놀이공원은 그에 적합하다. 그래서 자녀를 동반하고 놀이공원에 다녀온 부모는 오랜만에 부모 노릇 톡톡히 했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수동적인 레크레이션으로 가족 유대감이 공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족 간의 유대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가시간을 채워주는 기관에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숨막히는 고속도로망을 헤치고 와서 드넓은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디즈니랜드 정문에 들어서면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그 곳은 신비의 세계,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 행복의 세계로 포장된다. 그러나 놀이공원은 폐쇄된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안에서만 소비하게 만드는 종합 세트장에 불과하다. 그 곳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자극으로 충만해있다. 그런 면에서 놀이공원은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세계의 집약에 가깝다.

놀이공원은 여가의 본질인 한가로움이나 내면의 고요함,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중적인 정신과 육체 활동이 일정한 감독 하에서 이루어진다. 어른들이 놀이공원에 다녀오면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 같은 여가인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여가 사업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우리는 휴식시간도 볼모로 잡아놓는 거대한 경제 메커니즘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인간적 시대에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