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의 논리, 그 정치적 함의

by 글맛공방

예전에 EBS의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대학생들의 스펙 쌓기에 대한 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학생들이 직접 찍은 영상 속에는 스펙(학벌, 학점, 토익, 인턴십, 자격증, 봉사활동)을 쌓느라 다른 무엇을 하거나 생각할만한 여유가 전혀 없는 일상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스펙 쌓기 열풍이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 말대로라면 스펙이 취업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주 좋은 스펙을 갖춘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이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차피 다수의 졸업생들은 실업자 혹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자가 되어야 하는 경제구조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그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펙 경쟁이 좋아서 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 압력을 느끼며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행위의 반복 속에서 정치적 효과들은 늘 관철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펙 경쟁도 마찬가지다. 스펙 경쟁을 주체적으로 하느냐, 어쩔 수 없어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둘 중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한 정치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천이 관성이 되면, 나중에는 그것이 나의 의지인지, 남의 의지인지도 알기 어렵다.

스펙 경쟁에는 내밀한 정치적 효과가 숨어있다. 그 주된 효과는 ‘높은 실업률과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스펙 경쟁은 높은 실업률과 양극화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실업자가 되거나 저소득자가 되는 것은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그 논리를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만큼 고실업률과 양극화에 대한 권력의 책임은 면제된다.

또 다른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스펙 쌓느라 바쁜 대학생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거나 탐구할 시간이 없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정신은 공동화(空洞化)된다. 그 공동화된 정신을 인턴십이나 봉사활동으로 내면화된 기업의 정서가 채운다. 그 결과 독자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지시하는 내용만을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청년들이 양산된다. 이것도 권력층에게 좋은 일이다. 청년들이 적당히 무지하면, 부리기도 쉽고 지배하기도 쉽다.

혹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스펙이 직업 활동의 정교화에 부응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스펙수준은 직무상 필요한 기술을 훨씬 상회한다. 대부분의 직업이 요구하는 능력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업이 직원들을 쉽게 갈아치우는 것을 생각해보라. 작업이 고도의 복잡성을 요한다면 그러기 힘들 것이다. 스펙과 직업 활동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거나, 있다 해도 아주 느슨한 관계만이 존재한다.

스펙은 흔히 생각하듯 노동시장 시장으로의 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진실은 반대에 가깝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교육시장은 대폭 성장해왔다. 정부도 더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도록 꾸준히 유도해왔다. 명분은 교육이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 많은 청년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사회로 쏟아진다면 실업률은 폭등할 것이다. 그것은 큰 정치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청년층을 대거 빨아들인다. 그럴수록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은 더욱 늦춰질 것이다. 예전에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을 의미했다. 그러나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지금, 이러한 선별기능은 무력화된 지 오래다. 지금의 대학은 거대한 인력의 저수지이다. 마치 물고기들이 바다로 못 나가게 통제하는 가두리 양식장 같다.

갖춰야 할 스펙이 많을수록 사교육시장도 팽창한다. 고학력자 양산과 사교육시장의 팽창은 상호 되먹임 관계에 있다. 넘쳐나는 고학력 인력을 빨아들이는 것은 산업 현장이 아니라 사교육시장이다. 사교육 종사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 결과 더 많은 고학력자들이 양산된다. 스펙 경쟁은 실용적이지도 않고, 지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스펙 경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교육시장과 정치권력, 그리고 기업일 뿐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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