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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21. 2020

차별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 〈러브 인 아프리카〉와 책 〈검은 가면, 하얀 피부〉

1862년 9월 12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의 주들이 연방에 복귀하지 않으면 노예해방을 선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선언은 남북전쟁에 미온적이던 북부인들에게 도덕적 이상과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남부연맹의 독립을 승인하려던 유럽 열강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카롤리네 링크 감독의 영화 〈러브 인 아프리카〉는 백인과 흑인의 공존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독일 나치즘의 박해를 피해 아프리카 케냐로 이주한 한 유태인 가족이 주인공이다. 독일에서 변호사였던 남편 레드리히는 아내 예텔, 딸 레기나와 함께 영국인이 운영하는 농장의 관리자로 일하게 된다. 어린 레기나는 아름다운 초원을 뛰어다니며 원주민, 동물, 풍습에 익숙해져 가지만, 아내 예텔은 여전히 문명생활을 그리워하며 ‘오부워’라는 원주민 요리사를 냉대한다. 그를 본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 하는 짓이 나치 같다”고 말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에 남은 양가의 부모 형제들은 소식이 끊기거나 나치에 의해 살해당한다. 분노한 남편은 연합군 편에 참전하고, 아내 예텔은 오부워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운영해 나간다. 그러는 동안 예텔과 레기나는 오부워를 비롯한 원주민들과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어느 날 예텔은 하인에 불과하지만 자신들보다 훨씬 관대하고 인격적인 오부워에게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도 흑인을 차별했던 예전의 모습은 그녀에게서 이제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인간에 대한 신뢰와 우정만이 있을 뿐. 

영화에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이면서도 전쟁과 문명으로 황폐해진 백인들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곳으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흑백의 조화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훨씬 어둡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세계의 지배적 현상이다. 정신 분석학자이자 혁명가였던 프란츠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지배당하는 흑인의 정신 분열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자기 부정의 의식을 낳는다. 차별당한 흑인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흑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백인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백인으로부터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나아가 백인이 되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에 의한 흑인의 차별도 생산한다. 교육받은 흑인 지식인은 이렇게 느낀다. ‘나는 미와 덕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검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흑인과 다르다.’ 혼혈 여학생에게서는 이중적인 행동이 발견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니그로는 야만인이기 때문에 싫다. 식인종이라는 의미에서 야만인이 아니라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야만인이다.” 

그는 흑인이 무서운 존재로 변질되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누군가 “야, 저기 깜둥이다!” 하면 그것은 단순한 사실이므로 그저 웃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또 “야, 저기 깜둥이 간다!” 하면서 빙 둘러싸고 놀리면 웃음이 내키지 않는다. “엄마, 저기 깜둥이 좀 봐! 무서워! 무서워!”하면 결국 표정이 일그러져 무서운 흑인이 되고 만다. 파농은 자신을 포함한 흑인의 정신 분열을 이렇게 결산했다. “나는 전형적인 니그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백인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 얘기였다.” 차별은 흑인을 흑인도 백인도 아닌, 검은 피부에 하얀 가면을 쓴 존재로 만들었다. 

단일민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인종 차별 문제가 그리 심각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의 인종 차별도 만만치 않다. 일례로 아무리 교사로서의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어도 흑인이나 동남아 영어권 출신들이 영어 교사로 채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우리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가면 백인처럼 행세한다. 우리도 실은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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