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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26. 2020

전장에 울려퍼진 평화의 노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와 책 〈잃어버린 인간성〉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국적 열정과 민족 감정이 발달해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평화로울 때는 그런 교육의 영향이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때, 교육의 효과는 빛을 발한다. 

크리스찬 카리온 감독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도입부에서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상대국에 대한 증오를 교육받는 어린이들을 보여줌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을 암시한다. 프랑스 어린이는 독일에 빼앗긴 알자스, 로렌을 되찾아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영국 어린이를 독일인을, 독일 어린이는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원입대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독일의 테너 가수 슈프링크도 징집되어, 연인인 소프라노 가수 소렌센은 남겨두고 전선으로 떠난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은 겨울, 그는 서부전선에서 연합작전을 펴고 있는 프랑스군과 스코틀랜드군과 대치하고 있다. 소렌센은 슈프링크를 만날 요량으로 그와 함께 크리스마스에 군사령부 위문 공연을 하겠다고 독일 황제에게 제안해 허락을 받는다. 슈프링크와의 재회하고 달콤한 하룻밤을 보낸 소렌센은 황제가 내준 통행증으로 슈프링크의 부대까지 동행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포성은 그쳤다. 각국의 병사들도 참호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다. 슈프링크가 독일군 참호에서 소렌센과 즉석 공연을 시작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 평화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여기서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스코틀랜드 진영에서 슈프링크의 노래소리에 맞추어 백파이프 반주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슈프링크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든 채 노래를 부르며 적진에 다가가자, 스코틀랜드군과 프랑스군이 환호를 보낸다. 지휘관들은 날이 날이니 만큼 오늘 밤만 휴전하기로 합의한다. 각국의 병사들은 함께 모여 미사를 올리고, 먹을 것을 나누고, 서로 가족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들은 적군이 악마가 아니라, 처자식이 있는 가장으로, 똑같이 전장에 내몰린 동병상련의 처지임을 확인한다. 

서로 친해진 병사들은 다음날도 서로 총을 겨누지 못한다. 병사들은 자국의 폭격 시간을 적에게 서로 알려주고, 적을 자신의 참호에 숨겨준다. 이를 알게 된 상관이 조국을 들먹거리며 나무라자 프랑스군 중위는 이렇게 일갈한다. “조국이요? 여기서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국이 알기나 합니까? 전 칠면조를 뜯으며 ‘독일인을 죽이자’고 외치는 높은 사람들보다 저 독일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병사들 사이에 국경선은 사라졌다. 

알랭 핀킬크라우트의 〈잃어버린 인간성〉에도 영화와 비슷한 경험담이 나온다.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군 장교 에밀리오 루수는 적의 37번 대포가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참호를 기어 나왔다. 포복자세로 적의 참호 앞에 다다랐을 때, 오스트리아군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고 루수는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군복을 입고, 우리와 같이 말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커피를 마신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유별나게 느껴졌을까? 적은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충격적인 느낌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스트리아군 장교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 연기를 보는 순간, 나 역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집게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 방아쇠를 당겼다면 그는 땅에 나뒹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목숨이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확실한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적이 아니라,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1차 대전은 ‘체계적인 징병제’와 ‘총력전’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쟁과는 확실히 달랐다. 엄청난 참사규모는 두 개념과 무기의 발달이 결합된 것이었다. 각국의 정부 각료들과 정치 고문들 중 누구도 세계대전을 기획하지 않았다. 전투가 개시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성능 좋은 화기들은 엄청난 희생자를 냈고, 각국은 병사들의 ‘소모’에 대비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징병제였다. 징병제는 민간인과 군인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건강한 성인남자는 ‘징병대상자=잠재적 군인=잠재적 적’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고, 그로 인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논리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반면 국내의 모든 성인 남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 생산이 요구됨에 따라 군수산업은 큰 이익을 보았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이란 겁이 너무 많아 자신이 직접 나가 싸울 수 없는 두 도둑놈간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젊은이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무장을 갖춰 서로 야수처럼 싸우라고 들판에 내보낸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계 평화를 외쳤지만, 그 실현은 요원하다. 커져가는 현대전의 위력과 희생의 범위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그 반대일 것 같기도 하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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