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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29. 2020

정치권력, 자본권력의 탄환에 쓰러지다

영화 <JFK>에 나타난 자본의 힘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 도심에 위치한 딜리 광장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오픈카를 타고 행진하던 한 정치인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바로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였다. 사건 발생 2시간 후, 경찰은 인근 현장에서 ‘오스왈드’라는 24살의 청년 한 명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러나 결백을 주장하던 그 청년도 이틀 뒤,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한 남자에게 저격당해 죽었다. 그 후, 정부는 의심되는 사건의 배후는 아무도 없으며, 소련으로 망명했던 경력이 있는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는 여전히 의혹 투성이였다. 오스왈드를 비롯해 관련자들과 증인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결정적인 증거들은 조작, 은폐,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는 현재 진행형인 케네디 암살 사건의 배후를 정면으로 추적한 영화였다. 감독은 주인공 짐 개리슨(케빈 코스트너 분)―그는 암살 사건의 배후인물을 최초로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했던 실존인물이다―검사가 수사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정부의 결론에 의혹을 제기하고, 암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간다. 감독은 치밀한 정황 ․ 증거 ․ 증언 ․ 논리를 통해 케네디 암살의 배후에 군수자본과 보수 권력자들(CIA, FBI, 군부, 핵심적인 보수 정치인)의 카르텔이 있음을 주장한다. 

케네디가 닉슨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1960년대 초, 미국의 군수자본은 냉전의 논리에 힘입어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아이젠하워가 퇴임사에서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당시 군수자본의 힘은 엄청났다. “군부과 군수산업의 결탁은 미국에게 닥친 새로운 고비입니다. 군산복합체의 악영향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대해진 군수산업과 군부의 결탁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군산복합체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냉전 종식과 세계 평화를 주장하는 케네디의 집권은 그 카르텔 집단 전반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케네디의 평화 정책은 방위산업의 축소를 낳았다. 특히 케네디의 베트남 철수는 군수자본에게 결정타였다. 그것은 연간 8백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전쟁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케네디의 정책은 냉전의 논리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증대시켜왔던 정보기관에도 치명적이었으며, 군수자본에게 물심양면으로 정치적 지원을 받아왔던 군부와 보수 정치인들에게도 위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암묵적인 동의 하에 케네디를 죽였다. 

케네디 사후,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미국이 개입 명분으로 삼은 ‘통킹 만 사건(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 만(灣)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를 선제공격했다는 사건)’은 훗날 베트남 전쟁 개입을 위해 만들어낸 조작극으로 밝혀졌다. 군수자본과 그와 결탁한 권력자들이 이익을 위해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감독의 주장은 너무 영화 같은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와일드하고, 간혹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한다. 감독의 주장이 옳다면, 케네디 암살은 정치권력의 우위에서 자본권력의 우위로의 전환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권력’하면 주로 ‘정치권력’을 떠올린다. 그리고 ‘국민이 정치권력만 잘 통제하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은 타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 권력의 상당 부분은 ‘거대 자본’에게 이전되었다. 오늘날 거대 자본은 여러 미디어, 선전매체,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국민 의식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자본권력이 뽑아놓은 임시반장에 가깝다. 자본권력의 통제, 그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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