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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29. 2020

인문사회과학서 읽기와 글쓰기

1932년 독일을 여행할 무렵, 거대 정당의 당수가 나를 찾아와 물었다. “히틀러가 그렇게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탁자 위의 신문을 보시라고 했다. 신문 1면에는 반라의 무희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2면에는 기관총을 든 대대병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3면에는 자전거 발달사가 정리되어 있었고, 4면에는 체조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사진이 있었다. 나는 말했다. “바로 이런 식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요. 이는 곧 현대인의 내면도 혼돈 상태일 뿐임을 의미합니다. 혼돈의 내면을 가진 현대인들이 아무 맥락 없는 혼돈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그 혼돈 속에서 교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막스 피카르트가 쓴 『우리 안의 히틀러』에 실린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에 따르면, 현대인의 내면과 외면적인 생활 세계는 ‘불연속성의 세계’다. 콘텍스트성, 즉 정신적 ․ 지적 맥락이 부재한 세계다. 이런 막스 피카르트의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현대인이 과거 어느 시대의 인류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콘텍스트성의 부재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들이 맥락 없이 머릿속을 부유(浮游)할 뿐이다.

현대인이 콘텍스트성을 잃어버린 것은 신문이나 잡지,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미디어들은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들을 맥락 없이 전달한다. 일례로 현대인이 가장 즐기는 매체인 TV를 보자. 한 공영방송국의 프로그램은 이렇다. 6시: 뉴스. 6시 10분: 언제나 청춘. 7시: 영상앨범 산. 8시 10분: 일요진단. 9시: 체험 삶의 현장. 10시: 퀴즈! 대한민국. 11시: TV쇼 진품명품. 12시 10분: 전국노래자랑. 13시 20분: 일일연속극 다함께 차차차. 15시: 세상은 넓다. 15시 25분: 일자리가 희망입니다. 17시 35분: 열린 음악회. 19시 10분: 도전, 골든벨. …… 여기에 무슨 맥락이 있는가?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맥락의 부재’다. 

혹자는 신문만 열심히 봐도 지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오해다. 맥락 없는 신문만 봐서는 결코 지성인이 될 수 없다. 시인 김수영이 일기에 “신문 보지 마라.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느냐!”고 쓴 것은 신문이 단편적인 사실이나 정보들을 나열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양은 엄청나지만, 그 내용은 대개 표면적인 것을 다루고 있으며 깊이가 없다. 신문이나 인터넷에 실린 글들은 그 자체로 세계관을 정립시켜주지 않는다. 그 글들은 오히려 정립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해석되어야 할 대상에 가깝다. 

물론 신문이나 인터넷의 글들에도 글쓴이의 세계관이 투영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글들은 짧다. 신문의 경우는 한정된 지면에서 여러 가지 뉴스들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터넷은 스크롤의 압박과 모니터가 유발하는 눈의 피로 때문에 글이 짧을 수밖에 없다. 글이 짧다는 것은 분량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충분히 이야기해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필자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경우라도 대개는 그 밀도와 농도가 낮다. 자신의 세계관을 치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을 봐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콘텍스트성이 강한 인문 ․ 사회과학서를 읽어야 한다. 

-졸저 <인문내공>에서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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