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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Dec 01. 2020

가해자 속의 피해자, 그 부조리한 내면의 풍경

영화 <7월 4일생>에 나타난 베트남 참전용사의 상흔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대부 거백옥은 “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지난 사십구 년의 잘못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나이가 들어서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합리성의 문제이다. 자신의 젊음을 몽땅 바쳐버린 일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부정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동물이다. 인생의 의미를 잃으면 살아야 할 의지도 잃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7월 4일생>은 베트남 참전군인 론 코빅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레슬링 선수였던 론 코빅(탐 크루즈 분)은 ‘조국의 부름에 응하는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했고, 베트남에 파병된 후 척추에 총상을 입고 하반신 불구가 된다. 그러나 몸의 절반을 바친 참전 용사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1968년 세계적인 대불황과 대량 실업사태에 직면했던 미국사회에서는 반전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참전 용사들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사실 론 코빅이 베트남에서 경험한 것은 영웅적인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그가 죽인 것은 베트콩이 아니라, 여인, 아이, 그리고 동료―그는 실수로 신병 윌슨을 사살하고 만다―였다. 참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양심의 가책, 불구의 몸, 그리고 정신적 혼란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가해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전의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시달렸다. 그는 울면서 이렇게 절규한다. “다시 내 몸이 온전해질 수만 있다면, 내가 믿는 모든 것. 모든 가치를 포기하겠어. 다시 온전해질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 그것은 사실상 고해성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론은 자신이 바보같이 위정자들에게 속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단지 실수였다고 하기에는 자신이 치룬 대가가 너무 컸다. 그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당시 상이용사들에게 파라다이스로 인식되던 멕시코로 떠난다. 그 곳에서 그는 매달 지급되는 연금을 술, 매춘, 도박으로 탕진한다. 결국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자 마음먹은 그는 윌슨의 가족들을 찾아가 자신이 실수로 윌슨을 죽였노라 고백한다. 그리고 베트남전이 서민층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군수업자, 보수정치인, 부자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잘못된 전쟁임을 받아들이고, 반전시위에 참여한다. 

영화 속의 론은 극우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새로운 삶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해자 속의 피해자’들이 극우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그들의 정치경제적 처지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지배층에 포섭된 민중이다. 지배층은 안전한 곳에서 규약을 만들고, 청사진을 그리고, 전화로 얘기하고, 회의에 참석할 뿐이지만, 그들은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곳에서 맡겨진 임무에 충실한다. 그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극단적인 부조리와 허무는 인생 자체를 붕괴시킬 만큼 파괴적이다. 그들이 정신적 육체적 상흔을 극복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행위에 대한 합리성이 필요한데, 지배계급이 마련해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그 도피처가 된다. ‘가해자 속의 피해자’들이 갖는 보수적인 ‘신념’은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불가피한 절박함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 속의 피해자’까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가장 섬세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그 상흔까지를 들여다볼 때 사회개혁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반전주의자인 동생 토미는 시위대를 비난하는 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건, 형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그것은 사회개혁이 필요한 진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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