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 보기

by 글맛공방

메타 피직스와 격물치지

이창동의 영화 <시>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시민문학교실 강사로 출연한 김용택 시인이 호주머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들고 수강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사과를 본 적이 있습니까?” 수강생들이 당연히 본적이 있다고 하자, 그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과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이 사과가 무슨 색깔입니까?” 수강생들이 ‘빨간 색’이라고 답하자, 그는 다시 묻는다. “정말 빨간 색입니까?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보면 사과는 빨갛지만은 않습니다. 부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빨갛지만, 어떤 분은 하얗고, 또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게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햇볕의 영향이겠지요. 햇볕을 잘 받은 쪽은 빨개지고, 그렇지 않은 쪽은 하얗겠지요. 제가 여러분이 사과를 본적이 없다고 말한 것은 사과를 ‘자세히’ 본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물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과를 자세히 살펴보고, 만져보고, 그 향도 맡아보고, 사과를 잘랐을 때 듬성듬성 드러나는 과육의 실핏줄 같은 것도 보고, 그 것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아삭!’하는 소리에도 집중하고, 그 단맛을 천천히 음미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과 한 알이 열리는 데 필요한 햇볕, 바람, 이슬, 안개, 비, 흙, 그 안에 사는 미생물들의 작용, 농부의 땀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김용택은 그 무수한 힘들의 작용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를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으면, 보이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영화 속 김용택의 말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사과는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햇볕, 바람, 이슬, 안개, 비, 흙의 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기는 어렵다. 인문적 사유가 어려운 것도 눈에 보이는 것(현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본질)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영어로 ‘메타피직스(metaphysics, 형이상학)’라 한다. 여기에도 같은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 어원은 ‘메타피지카(metaphysica)’인데, 그것은 ‘뒤, 다음, 배후’라는 뜻을 가진 ‘메타(meta)’와 ‘자연’이라는 뜻의 ‘피지카(physica)’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메타피지카’는 ‘자연의 배후’라는 뜻이다. ‘메타피직스’라는 말에는 자연을 잘 관찰해야, 그 뒤에 숨어있는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논리는 동양에도 있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그것이다. ‘격물치지’에서 ‘격(格)’은 ‘잣대로 잰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사물을 잣대로 재면 앎에 이른다’가 된다. ‘사물을 잣대로 잰다’는 말은 ‘사물을 잘 살펴서 꼼꼼히 따져보고 분석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잘 분석하면 보이지 않는 앎에 이른다는 뜻이다. 동서양의 논리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도가니>가 이슈가 된 이유

사회적인 문제나 시사적인 문제에도 잘 보이는 것과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잘 보이는 것은 결과이다. 우리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는 것 대부분이 결과이다. 사건, 여론조사, 통계 모두가 결과이다. 언론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만 보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발생 과정을 알아야 하는데, 언론은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미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미덕이 되는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본질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영화 <도가니>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2005년 이미 언론에 의해 그 결과가 보도된 바 있었다. 그랬던 사건이 다시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사건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론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가해자들이 별 다른 처벌 없이 풀려났는지를 보여주자 대중은 새삼 분노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직접 보거나 접할 수 없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개괄할 수 있다. 거대한 세상은 몇 안되는 ‘거대 언론사’라는 좁은 창을 통해서만 보여진다. 만약 어떤 문제를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 하더라도 세상에 없는 문제이다. 그 만큼 세계 인식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고, 그 영향력도 결정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론은 생각만큼 객관적으로 세계를 보여주는 창이 아니다.


언론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언론은 팩트에 근거해 보도한다. 그것은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그 원칙을 지킨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여전히 남는다. 첫째,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보도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취사선택의 문제. 둘째, 팩트의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더 비중있게 소개하고 무엇을 단신으로 소개할 것인가의 문제. 셋째, 팩트를 어떤 시각에서 다룰 것인가 혹은 그 팩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하는 문제. 그것은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각 언론은 일정한 정치적 지향성, 세계관을 갖고 있고, 보도 내용은 그것을 반영한다. 보수적인 신문과 진보적인 신문이 같은 사건을 보도하더라도 내용이 차이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외에도 보도내용을 좌지우지하는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은 대부분의 언론사에 공통적인 것이다. 우선 언론사들의 주요 수입원은 대기업의 광고이다. 그리고 언론사 자체가 대기업인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친기업적 성격을 갖는다. 언론사 구성원들의 성격도 비슷하다. 특히 중앙일간지 기자들이나 경영진들은 대개 같은 출신 배경과 교육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구성원들은 서로 비슷한 계급 계층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전체 언론은 일정한 편향성을 띠게 된다.

언론들이 일정한 편향을 만들어내는 조건은 또 있다. 그것은 시각적 요소를 중시하는 미디어의 특성에서 나온다. 요즈음은 텔레비전 같은 영상매체 뿐 아니라 신문 같은 활자 매체도 시각적 요소를 중시한다. 그로 인해 시각화하기 좋은 기사들이 더욱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또한 언론사들 간에는 특종을 향한 경쟁이 존재한다. 그 압력은 언론 매체들로 하여금 비슷한 이슈에 집중하게 만든다. 편집회의에서는 ‘저쪽에서 다룬 것을 우리가 놓쳤다’거나 ‘우리가 먼저 다루었어야 했다’는 식의 얘기가 오가게 되고, 이쪽에서 다룬 보도 내용이 저쪽에서 다시 뉴스거리가 된다. 보도내용의 동질성은 강화되고,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들만이 중요해진다.

언론의 보도내용은 우리 눈에 잘 보인다. 그러나 언론사들의 어떤 과정을 통해 수익을 내는가 하는 문제, 언론사의 최대 주주가 누구냐 하는 문제, 저널리스트들의 계급 계층적 특성이 어떻게 보도 내용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 기자들이 기업이나 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는가 하는 문제 등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언론의 보도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알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보도 내용을 결정하고, 그를 통해 우리의 세계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론은 사회적으로 성역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 언론을 비추는 언론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선구자 해럴드 라스웰은 “누가 무엇을 어떤 채널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효과를 내면서 말하는가를 질문하면서 기사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론의 보도 내용만이 아니라, 언론 자체의 속성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을 쓰면 사고 능력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