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지적 활동의 모든 것
나는 예전에 한 신문에서 미국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의 가장 큰 소원이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 왜 글쓰기일까? 하버드대학교는 잘 알다시피 거대한 기득권을 가진 대학이다. 거기를 졸업하기만 하면 각 영역에서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런 대학생들의 소원이 ‘글 잘 쓰는 것’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성적 활동에서 글쓰기가 차지하는 역할은 결정적이다. 글쓰기는 지성적 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소위 지성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방식은 두 가지이다. 말하기와 글쓰기. 그러나 지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다면 단연 글쓰기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 못하는 지성인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글 못쓰는 지성인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뛰어난 지성을 갖추고 있지만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혹은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인 까닭에 대중 앞에만 서면 떨려서 말을 잘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릴 때 심각한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를 겪은 적이 있어 말을 잘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지성인으로서 글을 못 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세상에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말은 대개 글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연설 잘하기로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꼽힌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스스로 글을 쓴다’는 점이다. 그들은 직접 연설문을 쓰거나, 연설문 담당이 써 준 것을 바탕으로 말하는 경우에도 글을 직접 손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말을 잘하는 것은 글 실력을 바탕으로 한다.
타인에게 말 걸기, 자신에게 말 걸기
우리는 흔히 지적 능력이 뛰어나야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뒤집어도 말이 된다. 글을 쓰면 지적 능력이 높아진다. 글쓰기의 목적은 ‘타인에게 말 걸기’, 즉 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말 걸기’를 해야 한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은 왜 중요한가’, ‘그 생각은 논리와 근거가 있는가’ 하고 자문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리되어야 비로소 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는 옛날의 일기장을 들춘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기를 계속 써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오래 전에 쓴 일기를 다시 펼쳐보는 사람은 ‘이 글이 과연 내가 쓴 것인가?’ ‘내가 그때 이런 생각도 했구나.’ 하고 느끼곤 한다. 일기장에 기록된 내용들이 마치 남이 써놓은 것처럼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기를 썼던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분명 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렇다. 나라고 해서 내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적어놓아야 확인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일기는 글쓰기가 갖는 ‘자신에게 말 걸기’의 측면을 잘 보여준다.
러브레터를 쓰는 일도 그렇다. 여기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 러브레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자. 그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읽어내야 그것을 분명한 글로 표현할 수 있다. 러브레터에서 진정성은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도 탐구해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글을 읽었을 때 마음이 어떨까를 가늠하며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결국 러브레터를 쓰는 사람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동시에 읽어내야 한다.
글쓰기와 사고 능력의 관계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더 신중함을 요구한다. 말은 허공에 흩어져버릴 뿐이지만, 글은 남는다. 그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은 생각과 감각의 편린들을 표현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을 표현해도 좋은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그 편린들을 일단 뱉어놓고 생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글 쓰는 사람은 쓰기 전에 생각하고, 쓰는 도중에도 생각하고, 쓰고 난 이후에도 생각한다. 그 때문에 글쓰기는 지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김우창은 『세 개의 동그라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내가 마음에 가진 것을 표현하는 면도 있지만, 내가 어렴풋이 가진 것을 다시 정리하고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을 문제화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우리는 글쓰기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글을 씀으로써 모호하게 가졌던 생각들이 뚜렷해지고 섬세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치밀한 생각들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말은 현장성이 중요하다. 같은 말이라도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기 일쑤이다. ‘어떤 시공간에서 말하는가’, ‘어떤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하는가’, 혹은 ‘어떤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말하는가’, ‘어떤 표정과 음성, 제스추어로 말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결정된다. 언어 외적 요소들이 소통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글은 그런 것이 없다. 그러므로 글은 체계적이지 않거나, 논리와 근거가 부족하면 금세 설득력이 떨어진다. 글쓰기가 갖는 이런 까다로움이 지력을 발전시킨다.
글쓰기와 사유능력의 발전은 상호 촉진관계에 있다. 글쓰기를 하면 사유능력이 발달하고, 사유능력이 발달하면 글쓰기를 더 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작가들이 본래 똑똑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글을 씀으로써 똑똑해졌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작가들은 글을 씀으로써 자신이 나날이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 결국 작가들이 갖는 지적 자부심은 결국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