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을 독서의 공간으로 만들기

by 글맛공방

자기 내적 표현으로서의 방

세상에 책을 많이 읽고자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로 열정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떤 환경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문제이다. 자신을 어떤 환경에 둘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적은 것은, 독서하기 어려운 환경을 방치한 채로, 마음으로만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을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방을 독서하기 좋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방은 단지 먹고 자고 하는 생활공간이 아니다. 방은 주인의 정서적 공간이자 문화적 표현이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방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방은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삶의 패턴은 어떤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방은 그 사람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사람의 방에 처음 들어갔는데, 방 한가운데 이소룡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고, 벽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걸려 있다고 하자. 대번에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어떤 여성의 방에 들어갔는데, 여러 가지 악세사리와 화장품이 가득 놓여 있다고 하자. 역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이 많은 방도 주인의 내면을 반영한다.


방에 책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이런 작가의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이를 테면, 높은 책장으로 꽉 찬 사방 벽에 둘러싸여 널찍한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 있는 앙드레 지드의 사진. 혹은 사다리가 걸쳐있는 높은 책꽂이들로 가득 찬 서재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사진. 이런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만은 않다’는 것, 시시하고 속된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지적 세계는 얼마나 넓고 깊을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하면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책장은 어떤가. 재학 시절에 쓰던 교재나 참고서 몇 권, 베스트셀러 위주의 소설책 몇 권, 처세서나 재테크서 몇 권, 그리고 운전면허 시험문제지, 사전 몇 권 정도가 꽂혀있을 뿐이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아이들 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주인의 빈곤한 영혼을 드러낸다. 이런 책장을 가진 사람이 지성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소설가 아놀드 베니트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책이든 좋다고 생각되면 사라. 사서 방에 쌓아두면 독서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외면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중요하다.” 독서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방에 책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장서의 양이 1천권 이상만 되면, 작은 도서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심할 때 이것저것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기분을 환기시킬만한 책을 뽑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문제에 관심이 생겼을 때, 그에 관련된 책에 새삼스럽게 흥미가 생길 수도 있다. 장서는 그 자체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독서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관심사를 확장시킨다.


내 방에서 전자제품 치우기

독서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방에서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치울 필요가 있다. 독서에 방해가 되는 대표적인 것은 전자제품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혼자 집에 있을 때에도 텔레비전을 틀어놓거나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젊은이들은 컴퓨터나 모바일로 게임에 열중한다. 소음도 중독된다. 그렇게 시끄럽게 있다가, 전자제품들을 끄고, 책을 읽으려 하면 뭔가 허전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면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틀어놓고 독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은 너무 시끄럽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특히 가사가 없어야 한다. 가사가 있으면 독서에 방해받는다.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은 텍스트에 대한 접근을 감성적으로 만든다. 그런 까닭에 감성적인 글인 소설이나 시, 에세이, 혹은 음악이나 미술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음악은 텍스트에 대한 감성적 해석과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왜곡은 왜곡이되, 기분 나쁘지 않은 왜곡이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서를 읽을 때는 그 조차도 방해가 될 때가 있다. 인문적 텍스트는 이성적 사유와 판단을 요구하는데, 정신은 자꾸 감상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고요하게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자매체들은 심지어 작동하지 않을 때에도 잠재적 소음을 간직하고 있다. 소음도 중독이 된다. 사람이 고요하게 있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은 그럴 때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때 뇌는 활발하게 움직인다. 고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라. 그리고 책을 가까이, 자신의 주된 생활공간에 두라. 그러면 책들이 때때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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