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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Dec 31. 2020

어머니와 엄마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이 이어지질 않아 그때부터 시작해 해가 퐁 솟을 때까지 엊저녁에 저려 놓은 무로 충무김밥용 무김치를 만들었다. 제법 맛나게 되어 혼자 흐뭇했다. 화장실 가려고 나온 아들이 엄마 오늘 어디 가시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왜 저런 걸 묻는 지 의아하게 생각한 순간 자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 바쁜 듯 김치를 담는 내 모습이 그리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시어머니와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새벽 6시도 안되어서 오셔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만지시며 기치료를 해주시며 배도 꾹꾹 눌러 마사지를 해줬더랬다. 단잠에 성가신 나는 엄마에게 짜증도 많이 냈었다. 그러시고는 내가 눈 비비고 일어날 때쯤이면 셋째언니한테 간다고 아침도 안 드시고 나서시곤 해서 홍길동 같이 구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 말아 김치 쪼가리에 저녁을 드신 시어머니는 그 예뻤던 주름살 얼굴로 기다리시던 연속극이 시작하자마자 오 분도 안 되어 소파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잠이 들곤 하셨다. 새벽부터 왔다 갔다 일 하시는 시어머니 발걸음 소리에 갈등하다 나가보면 어머니는 "나올 거 없다 더 자라"시며 쓰레기통을 들고나가셨다. 어머님 나가신 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무심히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단잠을 이었더랬다.

그때는 몰랐었다. 엄마와 어머님의 새벽과 불면을. 두 엄니의 나이에 이제사 도착한 나는 두 어머님께 좀 더 다정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가수 서유석의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이 들어 보기 전에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부모님의 시간. 츤데레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다정하고 쭈글쭈글한 그 손들이 울컥 그립다.


글쓴이

화난 여자. 꿈이 현모양처에서 잔다르크로 바뀐 사람입니다.


* 이 글은 글맛 공방 프로그램을 수강한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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