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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Feb 09. 2021

거대기술체계, 그 신앙과 재앙

영화 〈아폴로13〉과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는 흔히 큰 것을 좋아한다. 큰 집, 큰 차, 큰 냉장고…….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술체계도 거대해져 간다. 원자력 발전, 국가 방위 시스템, 인공위성, 방송 매체 등은 거대한 기술체계 속에서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거대화되는 기술체계는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13〉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70년 4월, 선장 짐 러벨(톰 행크스 분)을 비롯한 두 명의 아폴로 13호 승무원들은 우주 비행 도중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다. 산소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그러자 산소가 우주선 밖으로 빠져나가고, 전력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우주선 내 이산화탄소의 양은 급증했다. 전기를 아껴야 하니, 컴퓨터도 켜지 못하고, 우주선 내부는 영하 120도로 떨어지고, 용변도 밖으로 배출하지 못한다. 승무원들은 우주미아가 될 처지. 영화는 지구로 귀환하기까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닥친 난관을 하나씩 모면해나가는 승무원들과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기술자들을 그려 나간다. 

영화 속 과학기술자들은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달에서 실어올 월석의 무게까지 계산해서 귀환진입궤도를 정할 정도로 치밀하다. 그러나 그들은 산소탱크 폭발사고가 나자,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사고의 원인은 부품 불량일 수도 있고, 부품 조립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기계공학자의 계산 오류일 수도 있고, 우주선 정비사의 근무태만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자들이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선이라는 기계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공학의 산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영화 속 관제 센타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계기판을 지키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안다. 전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관제 센타의 본부장도 그저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사람일 뿐이다.  

과학기술자들은 승무원들이 이산화탄소에 질식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정화기를 달착륙선에 장착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거대기술체계가 가진 결함이 다시 드러난다. 사령선과 달착륙선을 각기 다른 과학기술자(혹은 다른 회사)가 만드는 바람에 서로 호환이 안 되는 것이다. 장착 구멍이 한쪽은 동그라미 모양인데 다른 한쪽은 정사각형 모양. 그들은 우주선 내에 있는 테이프, 종이쪼가리, 비닐봉지, 양말짝, 우주복 연결 호스를 덕지덕지 연결해 문제를 해결한다. 영화에서는 그 장면을 감동적으로 그려내지만, 감정적 수사(修辭)를 제외하고 보면, 최고의 과학기술자들이 사소한 결함에 허둥대며 아날로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한 편의 드라마라기보다 코미디에 가깝다. 

승무원들의 무사귀환 후, 수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밝혀진 사고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산소탱크 내의 불량전선이 일으킨 합선이었다. 이 단순한 사고가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들여 계획했던 우주사업을 단번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거대기술체계가 가진 함정은 승무원들의 무사귀환으로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체계가 작고 단순하면 사고의 원인도 금방 알아낼 수 있고, 그 피해도 작다. 그러나 기술체계 크고 복잡할수록 원인은 오리무중이 될 가능성이 높고, 책임자는 모호해지는 반면, 그 피해는 일파만파가 된다.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규모의 문제에 관한 고전이다. 책에는 인간에게 알맞은 경제 규모, 사회 규모, 기술 규모에 관한 통찰이 가득하다. 슈마허는 과학기술에서도 첨단 기술이 아니라 ‘중간 기술’이 오히려 인간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 기술이란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훨씬 우수한 것이지만, 거대기술체제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고 비용이 적게 들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기술은 인간의 통제 하에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기술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법칙과 원리에 의해 스스로 발전한다. 과잉기술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환경을 붕괴시키며,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중간 기술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노동의 기쁨을 주지만, 과잉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비인간적인 잡무로 만들어버린다. 오늘날 노동이 대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된 것은 과잉 기술의 영향이 크다. 거대기술체계는 인간의 심리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 거대기술체계 속에서 현대인들은 대개 무력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망쳐버릴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슈마허는 “인간은 작다. 그러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썼다. 그러나 인류는 늘 더 큰 기술체계를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 사건이 남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무 것도 없다. 인류가 거대기술체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새턴 1A 로케트(지상발사대에서의 화재로 3명의 우주비행사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챌린저 호, 드리마일 섬, 체르노빌 발전소와 같은 재앙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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