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와 책 〈텔레비전을 버려라〉
TV의 역사는 1936년 11월 2일 영국 국영 방송 BBC가 처음으로 방송을 내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TV는 인간에게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발명품이 되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그 영향력에 대해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TV를 보는 사람은 그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는 TV가 제공하는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간호사 메리와 결혼한 보험회사 직원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진짜가 아니다. 그의 생활은 ‘트루먼 쇼’라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통해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지만, 태어나자마자 방송국에 입양되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살아온 그는 그것을 모른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 즉 아내, 부모, 이웃, 친구, 회사, 행인들 심지어 바다, 기후, 태양조차도 초대형 세트장 속에서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그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은 시청자들에게 광고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일상은 그가 모든 것을 진짜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이지만, 프로듀서의 각본과 지휘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이다. 쇼프로의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프는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일상을 은밀하게 조작한다.
영화의 마지막, 트루먼이 고군분투 끝에 세트장을 탈출하려 할 때, 프로듀서는 이렇게 마지막 경고를 보낸다.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인 역겨운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너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탈출하겠는가?” 그것은 TV에서 위안을 찾는 대신 현실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버려라〉는 한때 미국의 유수한 TV광고업체 사장이었다가 지금은 환경론자가 된 제리 맨더가 TV의 악영향에 대해 비판한 책이다. 흔히 사람들은 TV가 자신과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과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주범이 바로 TV이다. 시청자는 TV에 모든 감각기능을 빼앗겨 외부로부터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상업 TV 프로그램의 경우 1분에 8-10번의 기술조작이 일어난다. 광고는 그 두 배다. 그 화려한 기술조작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며, 인간의 감각구조를 교란시킨다. 시각 미디어는 청각 미디어와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는다. 흔히 아이들은 TV를 본 후 과잉행동을 한다. 어릴 때 TV에서 본 영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고 우리의 일부를 구성한다.
TV는 영상매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영상매체는 극적인 것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TV에서는 평화보다 전쟁을, 안심보다는 공포를, 집단의 사상보다는 지도자를, 깊이 있는 것보다는 피상적인 것을, 정신보다 물질을, 평정보다 격정이나 욕망을, 존재보다 액션을, 질보다 양을 강조하게 마련이다. 만약 극적인 것이 부족하거나 없다면? TV는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영상 매체가 힘을 얻게 됨에 따라 ‘의사사건pseudo-events’, 즉 진짜도 가짜도 아닌 사건들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정치가, 테러리스트, 저명인사, 시위대 등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TV 카메라를 의식해 연기’하게 되었다. 그것이 ‘연기’라고 해서 완전히 가짜는 아니다. 왜냐하면 ‘연기’라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 속 트루먼처럼 거대한 돔형 세트장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세상 자체가 거대한 TV의 세트장이 되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트루먼’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