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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Apr 14. 2021

떠남을 준비하는 사람들

지난여름,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들렀습니다. 급하게 써야 하는 사진이라 바로 인화를 부탁하고 기다렸습니다. 새 여권을 들고 떠날 여행지를 상상하며 기다리던 중, 팔십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엄니, 사진 찍으실라고요?” 사진 기사님의 반가운 인사에 할머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십니다.

“하이고, 덥네, 더워.” 할머니는 열심히 부채질을 하시며 걸려있는 사진들을 둘러보십니다.

“어떤 사진 찍으실라고?” 기사님의 재촉입니다.

“잉, 영정사진도 찍소?”

“그라문요, 예쁘게 찍어드리쥬. 저쪽에 가서 단장 허시고 앉으셔.”

“잉, 근디, 월마요?”

“예에, 칠만 원요.”

“비싸네잉, 저으기 읍내는 오만 원이라는 디”

“아, 엄니! 읍내가 싼거쥬. 원래 칠만 원 정도 맞어유.” 기사님이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십니다.

“읍내는 오만 원이라는디···.”

“엄니, 찍으실거유?”

“오만 원에 헙시다.” 결국, 흥정을 하십니다.

“아유 안돼유.” 

“읍내는 오만원인디···.”

“그라믄 읍내 가서 찍으셔유. 지는 그렇게 못혀요”

“읍내는 오만 원이라는디···. 뭐시 이리 비싸댜···.” 할머니는 혼잣말과 함께 사진관을 나가셨습니다.     


저에게 영정사진은 죽음과 슬픔의 상징이었습니다. 빈소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망자의 생전모습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떠남을 실감하고 슬퍼하지요. 그런 영정사진을 흥정거리로 삼아 열심히 값을 깎으시던 할머니. 영정사진도 같은 사진이라며 흥정을 거절하시는 사진 기사님. 이들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저만 죽음과 떠남의 무게에 숙연해져 있었던 것이지요.      


한 장소에 ‘떠남’을 준비하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여행준비를 도와주는 이, 여행할 마음에 한껏 마음이 부푼 이, 그리고 마지막 여행을 흥정하는 이. 셋 모두 떠남을 준비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다만 ‘떠남’의 거리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여행을 준비하는 더운 날이었습니다.


글쓴이

브레드씨

빵을 좋아하고, 모든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는 사람.


* 이 글은 글맛공방 '에세이쓰기' 프로그램에서 수강생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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