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한 아이는 놀이터 가운데에서 저항을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에워싸고 놀리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놀림 당하는 아이가 발음이 부정확하여 그것을 따라하며 따돌리는 것이 재미있었나보다. 한 아이를 소외시키고, 다른 아이들을 동참시켜 함께 놀리는 것을 주도하는 두 아이가 보였다. 놀이터가 떠나가라 싫다며 울부짖는 소리를, 따돌리는 아이들 엄마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제지는커녕, 방조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와 엄마의 대화는 이랬다. "네가 저 친구를 놀리고 괴롭혔니?" "아뇨, 엄마." "그래. 네가 안 그랬다면 안 한 거지."
적잖이 충격이었고, 연일 화두가 되고 있던 학교폭력 미투가 떠올랐다. 미투 가해자들도 어린 시절 멋모르고 놀리거나 대장질 했던 경험들이,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계속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악랄한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저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대장 노릇하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얻는 즐거움은 어린이가 추구해야 할 즐거움이, 분명 아니다. 혹자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끼리의 놀이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들도 함께 있는 공간에서 이 아이들이 삐뚤어진 즐거움을 맛보았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어른들의 눈앞에서 친구를 괴로움에 울부짖게 만들었는데, "그래, 네가 아니라면 아닌거지."하며 나의 폭력을 묵인해주는 걸 경험했으니, 아이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나에겐 학령기를 앞둔 자녀가 있다. 최근 학교폭력 미투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풍경을 보니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피해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시점에야 미투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에서 실마리가 보였다. 학교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흔히 울타리로 불리는 학교를 벗어나서야 비로소 미투를 할 수 있다니. 학교는 아이를 지켜주는 곳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공간임이 증명된 셈이다. 우리는 이 전쟁터로 아이들을 내보내야 한다. 이러한 학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그 곳으로 나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 지에 대한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을 당하면 “안 돼”라고 소리치라는 공익광고가 있다. 학교 곳곳에는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하면 신고하라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서야 용기를 낸다. 이는 학교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폭력의 굴레는 계속되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격자와 피해자들에게 제보를 종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가혹하다. 폭력이 만연한 공간에 아이들을 장시간 가둬놓고, 혹여나 당하면 말하라니. 폭력이 생산될 수밖에 없는 학교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이런 헛소리만 해대니 아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학교는 전혀 아이들을 보호해 주지 않고 오히려 폭력을 생산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싸움 잘하고 힘 센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을 괴롭혔다면, 요즘의 학교폭력은 권력과 재력까지 합세한 형태라고 한다. 이렇게 절대적 우위에 있는 강자가 약자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학교다. 획일화되고 수직적인 교육 방침 아래, 대부분의 아이들은 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동참을 통한 소속감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은 곧바로 강자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수년을 학교에서 보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동조하고 어른들이 방관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는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화된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힘의 원리에 굴복하는 것을 배운다. 강자의 무차별적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고, 피해자는 물론 동조자들까지 삶의 자신감을 잃게 된다.
학교 폭력은, 학교라는 시스템이 가진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개인들의 신념과 목소리만으로 바꾸기는 무척 힘들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인가.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목격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다. 학교 시스템의 폭력성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노력하는 한 편, 아이들이 폭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줘야 한다. 이쯤 되면 학교라는 전쟁터로 자식을 내보내는 부모로서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기본 덕목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죄책감, 책임감, 자존감 같은 것들이다.
요즘은 지나치게 성적 · 성과지향적인 경향과 내 아이만 위하는 마음에 기본이 무시되기 일쑤이다. 처음에 소개했던 6세 아이들의 목격담 또한 그렇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가르치고, 아이에게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치졸한 짓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자존감을 길러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배우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운다면 학교폭력 가해자로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을 갖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가해 동조는 줄어들 것이고 폭력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다. 설사 피해학생이 되더라도, 길러온 자존감으로 탄력 있게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제도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한다. 그래놓고 막상 학교폭력에 방관자나 피해자로 노출되었을 때에야 용기를 내도록 독려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기본에 충실한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폭력적으로 제도화된 학교 속에서 내 아이만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해자로 성장하지 않고, 피해자가 되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목격자도 약자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손연지
* 이 글은 '글맛공방' 프로그램을 이용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