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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탁 Nov 25. 2021

5킬로미터 31분, 인생을 깨달은 거리

3킬로미터만큼 나에게 가까워진 시간

운동도 운동이지만, 뭔가 나태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머리가 복잡해지면 스멀스멀 '양재천이나 뛰고 올까...'라는 도피성 생각이 떠오른다. 여기까지만 보면 달리기에 꽤나 일가견이 있을 것 같지만 10킬로 마라톤은 살면서 한 번, 1시간 10분을 기록했고, 평소에는 5킬로만 뛰어도 이성이 오락가락하는 체력의 소유자다.


시국도 시국인지라 마스크를 쓰고 달리면 어느순간 자가호흡을 하면서 자체적으로 노화를 촉진(?)하게 되는데,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나는 왜 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그래서 이날은 이것만 생각하면서 달려보기로 했다. 저녁으로 먹은 탕수육이 내뿜는 불안함을 안은채.



1. 욕심, 자신을 속이는 것은 결국 돌아온다.

처음부터 무슨 뜬금없는 철학인지 의아할 수 있지만, 가장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 중 하나였다. '나 그래도 한 5킬로미터는 가뿐하지?', '러닝 끝나면 집가서 씻고 일 좀 마무리하다가 자야지' 이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자신만만하고 오만할 수 있는 것은 뛰기 전까지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탕수육도 여기 해당한다. 일상 어딘가에서 나와 타협을 했다면, 반성하거나 행복을 만끽할 지언정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 미련하게 욕심을 부린 '탕수육 한 개만 더'가 눈 앞에 놓인 열 걸음을 마저 뛰지 못하게 했으니.


2. 다음 러닝이 반드시 오늘보다 훌륭할 수는 없지만, 더 잘 뛸 가능성은 오늘 뛰지 않았을 때보다 더 크다.

당장 내일이나 모레 다시 달린다고 오늘이나 어제보다 잘 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련하게 또 뛰기 한시간 전에 저녁으로 탕수육을 짚어먹었을 수도 있고, 약속이 생길 수 도 있다. 하루 이틀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것도 아닐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뛰지 않으면, 그 다음 달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개선된 시간, 거리를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이를 먹을 수록 훨씬 더 다양하고 거대한 변수들이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불쑥불쑥 끼어들기를 시도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꾸준한 것은 분명 어떤 형태로든 그 다음으로 이어진다. 로또도 사야 1등이 될 가능성이라도 있다.


3. 처음 몇십미터와 마지막 몇십미터의 차이

몸을 풀고 뛰기 시작하면 날아갈 것 같다. 컨디션도 좋다. 솔직히 이때마다 조금씩 오버페이스로 달려도 '이 정도면 이 페이스로 끝까지 달릴 수 있겠는데?'라는 오만한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처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하다는 타이슨의 말처럼 머지 않아 육체에게 정신이 처맞기 시작하고, 이성은 빠르게 현실로 복귀한다. 어떻게 어떻게 견디면 애플워치와 나이키런이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힘을 내라는 응원을 보내는데, 이제 막 출발했을 때 보이는 수십미터와 골인 지점까지 남은 수십미터를 바라볼 때의 체감거리는 당연하게도 너무나 다르다. 오만했던 만큼 절망스럽다고 해야하나. 요즘은 좀 광기(?)에 빠져서 달릴 때도 있다. 물론 제정신인 적은 없었다.

많은 부분이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분명 막막한 부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첫시작은 설레고, 자신감 넘치는 그런 포지션이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지치기 마련이다. 육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일 요소는 언제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쩌면 목표지점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오히려 그때 멈칫하면 더 힘이 들어가거나 원하는 결과에서 더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


4. 첫 고비를 넘기면 지속할 수 있는 탄력이 생긴다. 흐름을 타게 된다.

대충 1킬로미터하고 절반 가량을 뛰다보면 내 기준으로 1차 고비가 온다. 고비라고 표현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아무튼 숨이 가빠지거나 슬슬 몸이 비명...까지는 아니고 불편한 기색을 표하기 시작한달까? 이때 멈칫하면 다시 달리기 힘들었다. 한 번 휴식하는 방향으로 몸이 방향을 틀면 다시 꺾기 힘들었다. 

반대로 원만한 합의로 페이스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몸을 다독이는 듯 채찍질(?)을 하면 거짓말처럼 수백미터 후에 어느정도 다시 안정이 찾아왔다. 주식으로 따지면 횡보구간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저점, 고점이 깨지느냐, 뚫리느냐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페이스가 깨지면 나락가는 거고, 고점 뚫어서 엔돌핀 돌면 화성.. 아니 달리기의 경우에는 그것도 결국 나락가는 결말일 것 같다.


5. 목표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계를 정했다는 의미. 한계에 가까울 수록 우리는 힘들다.

'오늘은 00킬로만 달려야지'라거나, '00분만 뛰어야겠다'거나 '00번 다리를 찍고 돌아와야지'이런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 목표점에만 가까워지면 컨디션이 얼마나 좋았건, 그날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이 꼭 갑자기 힘들어지는 기분이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끝이 임박해서 그런지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예외없이 점점 힘이 들어갔다.

목표를 정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굳이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까지 나 스스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6. 몇발자국으로 달성한 목표.

앞서 말한 것과 맞닿는 부분이 있는데, 미칠 듯이 힘들고 지쳐서 결국 목표한 거리, 시간을 남겨두고 걷는 것을 택할 때도 있다. 사실 뭐 뛰는데 옳고 틀린 것이 있을리가 없다. 다만 '내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찜찜함은 남기 마련. 목표를 너무 과하게 잡은 것이 아니라면, 고작 눈 앞에 보이는 몇 발자국 때문에 오늘은 그 뿌듯함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조금 많이 아쉬운 일이었다.


7. 내가 정한 목표, 한계. 그리고 이를 넘어선 한 발자국.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물론 뿌듯하다. '어떻게든 또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잠시나마 후련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목표지점에서 100미터라도, 1분이라도 더 뛰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몇 배는 더 컸다. 살면서 스스로가 정한 목표,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분명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만 거기서부터 내딛는 만큼이 내가 오늘 나를 뛰어넘은, 성장한 거리인 것이다.


8. 휴식의 중요성.

한 번 뭔가 꽂히면 뭔가 몇일 연속으로 뛰고도 '오늘도 가볍게 달릴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과욕으로 몇일 동안 뛰고도 기어이 또 다시 나가면 그동안 가벼운 산책 수준의 달리기가 아니었다면 결국 얼마가지 못할 것이 뻔하다. 타이어 압력 경고 정도만 떴는데 갑자기 시뻘건 엔진 경고등이 뜨는 느낌이랄까.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지만 휴식은 결국 필수로 포함시켜야 하는 과정이다. 버닝 버닝하는데, 타오르기만 하다가는 어디 하나가 재가 되어 날릴 지도 모를 일이다.


9. 결국 다 연결되어 있는 일상

이건 무척 간단한 논리인데, 어쨌든 달리기는 결국 몸에 이롭다.(과하지 않다면, 그리고 나는 내가 과하게 뛸 정도의 위인이 아닌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운동을 통해 몸은 건강해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스스로 몸을 관리하게 된다. 달릴 때 아픈 경험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녁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도 피하고. 그리면 자연스럽게 식단관리가 되고, 이는 더 좋은 기록으로 또 일상으로 이어진다. 


10. 깨달은 것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즐거움까지 깨닫는 재미

5킬로미터 뛰면서 생각한 것으로 심지어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다. 미약한 내 브런치를 어떤 분들이 봐줄지는 의문이지만(감사!...감사...!) 어떻게 보면 '고작' 뛸 뿐인 행위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아가 새로운 기회와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공유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읽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고(착한 분...) '참신한 헛소리를 길게도 적었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난 달리기 선수도 아니고, 취미나 특기에 달리기를 적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힘들기만 한 걸 왜 뛰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어쨋든 나는 지금까지 조금씩 뛸 때마다 나 스스로가 변화를 하고 있다고, 뛰기 전보다는 어느 방향으로든 더 전진했다고 믿는다. (적어도 허리둘레는 2인치가 줄었으니까) 


5킬로미터. 솔직히 누군가에게는 달리기엔 막막한 거리일 수 있다. 나에게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거리다. 대충 30분은 달리기만 해도 간당간당하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자기계발을 위해 쏟는 시간이나 노력을 생각해보자. 먼 곳까지 찾아가는 번거로움,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 등. 그것과 비교하면 5킬로미터, 30분은 꽤나 가성비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달리기가 그냥 막연한 사람이라면, 시행착오라고 생각하고 한 번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미련한 나도 저만큼은 깨달았는데, 개성넘치는 여러분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또 다른 것들을 깨달을 것이라고 믿는다.


끝으로 나의 필살기? 같은 2곡을 추천한다.

Major Lazer & DJ Snake - Lean On 


Unlike Pluto - Everything Black (feat. Mike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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