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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탁 Jul 21. 2021

쉬는 연습

우리는 왜 잉여롭지 못했나


뜬금없이 막 달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집 지면을 마무리하는 멘트를 적다가도, 오늘은 좀 쉴까 싶어서 누운 침대에서도 좀 달려볼까 싶을 때가 있어요. 

가볍게 옷을 챙겨입고, 스트레칭을 합니다. 에어팟을 끼고 나이커런을 키면서 애플 뮤직도 적당히 골라요.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인 마스크도...잘 착용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뛰다보면 자가호흡이 되면서 의식이 아찔해지는 기분이들지만, 혼미한 정신을 다잡을 겸 이따금씩 뛰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기회비용의 늪

조금 동 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기회비용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더라고요. 간단하게 잠을 자기 전 꼭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자는데,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모마일차를 마시던 재스민차를 마시던 배도라지차를 마시던. 하나를 마시면 나머지 차는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기회비용인 셈이죠. 무척 중요하고, 동기부여가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몰입하면 오히려 정말 사소하고 가벼운 판단을 앞두고도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는, 심지어는 선택을 마주할 때마다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거죠.


크고 작은 관성이라는 일상

생활이 어느정도 궤도에 들어서면, 그러니까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다보면 하나의 틀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도로가 없는 길을 사람이나 차가 자꾸 다니다보면 울퉁불퉁했던 지형이 평평해지기도 하고 모난 곳이 깎여나가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러다가 인적이 끊기면 다시 이름모를 풀이나 꽃들로 무성해지기도 하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평범하게 적응하면서, 적당히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가끔 뜻하지 않은 갈등에 곤란해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런 것 같아요. 낯설었던 업무는 익숙해지고, 생판 남이었던 이들과 둘도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밤을 새도 좋아 죽던 취미에 더 이상 그날의 열의를 느끼지 못하기도 하죠. 내내 붙어다니던 친구들과는 연락마저 끊긴 어색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요.



일단 쏘아진 화살을 달려가서 붙잡거나 돌리지 못하고, 다리에서 강으로 떨어지는 차에서는 핸들을 아무리 돌려도, 브레이크를 밟아도 방향을 바꾸거나 멈출 수 없어요. 일상에서 항상 이런 관성의 압박을 느낄 필요 없는데도 어느순간 시작된 관성이 일상에서도 자꾸 자신을 밀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 것 같달까요?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 영영 사라져버린 미래의 가능성.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뜻밖에 스케줄이 취소되어 붕뜬 시간을 마주하고, 굳이 달리기라도 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이유는 갑자기 한가해진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위화감마저 느끼며 무언가라도 해야하는 잉여시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SNS 속 인플루언서 계정의 하루에 2시간을 자며 성공했다는 업로드에는 수만 개의 좋아요가 달리고, 늦은 밤 오피스가의 빌딩숲에는 불이 꺼진 창문보다 켜진 창문이 훨씬 많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노출된 분위기 속에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요? 


적당한 합리와 어느정도의 억지를 합쳐 예측컨데, 저는 느닷없는 우연의 겹침으로 생긴 시간들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가만 있으면 지금 이대로 굳어버릴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 같다는 초조함 그리고 일상에서 줄곧 겪고 있던 관성에 의해서 말이죠. 


솔직히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과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다져진 흙길에는 씨앗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처럼요. 다만, 앞으로 조금씩 그 길을 벗어나보고자 해요. 당장 그 길을 엎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저 한구석에 고이 접어두었던 먼지 쌓인 취미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모난 곳이라 깎여나간 분부이 사실은 나만의 개성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려 합니다. 무작정 생산적인 일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언제 쉴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보려고 해요.


오늘 점심은 뭘 먹었어도 맛있었을 겁니다. 빗나간 화살은 주워서 다시 쏴도 되고, 일은 업무시간 능률을 올리면 해결되는 일이죠. 조금만 더 자신에게 솔직하는 것부터 시작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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