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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Jan 31. 2019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산책길

자연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거닐던 순간



자연이란 존재가 일상 속으로 들어온 첫 순간


2011년 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되돌아가는가는 길이었습니다. 늘 걷던 길이기에 별다른 감흥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음악관을 지나던 찰나, 길 옆 나무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묘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라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소리를 따라가 보니 난생처음 보는 낯선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야생조류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으니 심장이 막 두근거립니다. 자칫 섣부르게 인기척을 내면 도망갈 까 봐 조심조심하며 이 친구를 들여다보았지요. 잠시 동안 나무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나무둥치를 쪼아대다 사진 한 장만 남긴 채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새로운 존재와 마주친 강렬함 때문일까요? 이 친구 이름이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연구실로 되돌아와 처음으로 도감이란 것을 찾아보았지요. 나무를 쪼아대는 것이 혹시 딱따구리가 아닐까 하고 범위를 좁혀보니 역시나 '쇠딱따구리'로 불리는 친구가 맞았습니다.  그냥 이름 모를 새가 아니라 '쇠딱따구리'라는 이름으로 만남을 맞이하니 만남에 담긴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자연이란 존재가 제 일상 속으로 처음 들어온 순간이었지요.

처음으로 눈 앞에서 야생동물과 마주친 날, 쇠딱따구리 



자연과 거리를 좁히며 걸었던 순간들


그다음 날부터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수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도 살아있는 생명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깨어있는 감각으로 길을 걸으니 교원대학교 캠퍼스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참으로 다양한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환경교육을 시작한 이래 늘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숙제가 하나 있었는데, 비로소 자연과 친해지기란 과제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풀과 나무와, 새와 동물과, 꽃과 곤충을 들여다보며 자연과 제 사이에 벌어져있던 거리를 서서히 좁혀갔습니다. 그렇게 여러 존재들이 우리 옆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던 순간들입니다. 학위논문으로 잔뜩 예민해져 있던 마음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산책길이 제게 건네 준 또 다른 선물이었지요.  


캠퍼스 산책길을 함께 걸었던 자연 친구들


자연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던 순간들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자연 역시 단어로만 인식해왔습니다. 찔레꽃, 산수유, 꽃다지, 제비꽃, 매화꽃, 호랑나비, 호박벌, 등에, 꾀꼬리, 뻐꾸기, 백로, 자작나무 등 이름만 알고 있었지 진짜 어떻게 생긴 존재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사진을 찍고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드디어 단어로만 알아왔던 관념적 지식이 실물로 연결되면서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오는 사계절 역시, 달력이 한 장 한 장 바뀌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계절 따라 변하는 꽃과 나무, 그리고 변화하는 기온과 날씨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체감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실체 없는 막연한 개념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첫 순간이었지요.  


단어로만 인식해 왔던 존재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받아들인 순간들



삶의 전환점을 선물해 준 교원대 생활


사실 자연친화적인 삶, 자연을 알아가는 것이 한 번에 얻어지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시도하다가도 저도 모르게 다시 도시인의 삶으로 되돌아가길 여러 번 반복했지요. 교원대 생활 역시 논문과 강의에 얽매인 채 죽어있던 삶을 살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쇠딱따구리를 길에서 만나고 난 후부터 지냈던 마지막 1년 동안 교원대학교 캠퍼스를 자연의 관점으로 만나면서 제 삶이 바뀌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지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갖게 되었고, 죽어있는 마음이 아니라 깨어있는 마음으로 길을 걷게 되었지요.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 호흡을 조절하는 방법도 새롭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맞는 제 여행법을 터득한 것이 제일 고마운 선물입니다.  


언제고 충북 청주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학교를 방문하려 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제가 거닐었던 공간은 잘 있는지, 그 속에서 함께 공존하던 자연 친구들 역시 여전한지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제게 맞는 삶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나갔던 시간들" 


캠퍼스 산책길에서 무지개를 처음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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