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송호수에서 만난 자연 친구들
장항선 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창 밖 풍경을 내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시간 따라 계절 따라 역과 역 사이사이에서 펼쳐지지요. 그리고 가 보고 싶은 의외의 장소를 발견하는 그런 순간도 있답니다. 왕송호수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열차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보며 집으로 되돌아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영등포를 지나 수원역에 도착하기 전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 장소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차가 휘익하고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창 밖에 보이는 커다란 호수는 제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도를 찾아보며 그곳이 의왕시에 있는 왕송호수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왕송호수가 언제고 한번 꼭 방문해보고 싶은 장소로 자리매김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장소 인연 역시 사람 인연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보니 자투리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전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왕송호수라 기왕 여기까지 온 이상 한번 가 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지요. 그리고 의왕역 2번 출구로 나와 황구지천을 따라 10여분을 걸어 내려오다 보니 왕송호수에 도달했습니다. 그렇게 우연과 우연을 더해 왕송호수와 첫 연을 맺으며 거닐기 시작합니다.
왕송호수는 워낙 넓어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의왕역 2번 출구 길을 통해 왕송호수로 오면 왕송 생태습지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지요. 이 곳에서는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생태습지 곳곳으로 나 있는 오밀조밀한 산책로를 거닐어봅니다.
텅 비어있는 공간 같지만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첫 친구는 바로 때까치였습니다. 원래 예민한 친구라 놀라서 날아가버릴까 봐 조심조심 살펴봅니다. 다행히 저를 위협요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 가깝게 거리를 허락해주더군요. 한참을 갈대밭과 주변 나무를 오가며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며 사진 찍기를 허락해줍니다.
안내지도를 보니 왕송호수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4,3km 정도 되는 순환코스를 레일바이크나 호수 열차를 타고 편하게 둘러볼 수 도 있고, 직접 걸으며 빙 둘러볼 수도 있지요. 저는 왕송호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속도 대신 깊은 시선을 선택했습니다.
열차를 카페로 개조한 KTX 쉼터 주변 습지데크길을 먼저 거닙니다. 주변에서 쇠딱따구리 울음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두세 마리 쇠딱따구리 무리가 나무를 옮겨가며 분주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쇠딱따구리 만남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왕송호수가 품고 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처음 올 때는 넓은 호수에 새들이 가득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왔는데, 한겨울 추위에 얼어붙은 호수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리 삼총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청둥오리가 얼지 않은 물가를 찾아 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 옆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물닭과 논병아리도,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하던 왜가리 친구도 마냥 반가웠던 순간입니다.
왕송호수가 보이는 오른쪽에서는 물새를, 그 반대편에서는 산새들을 만나며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참새, 박새, 직박구리, 멧비둘기를 비롯해 노랑턱멧새, 딱새, 방울새를 만나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걸었던 순간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새들을 만나며 걷다 보면 어느덧 데크길 구간이 나옵니다. 아쉬운 점은 호수를 직접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은 레일바이크에 양보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걸으면 두 길이 서로 위치를 바꾸며 호수 경관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 나타나지요. 이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챙겨 보지 못한 왕송호 풍경에 빠져듭니다. 탁 트인 넓은 호수를 바라보니 시원하기 그지없습니다.
수도권 최대의 생태탐방지라는 타이틀답게 다양한 산새, 물새들을 만나며 신나게 함께 걸었던 하루였습니다. 마음 같아선 왕송호 둘레길을 한 바퀴 다 돌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떠나야 합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출발지로 되돌아옵니다.
다시 생태습지 부근에 이르러 왕송호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때마침 기러기 무리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왕송호수를 지나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연, 고층건물, 그리고 한 무리 기러기가 만들어 내는 풍경에 잠시 빠져들며 한나절 왕송호수 생태나들이를 갈무리합니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생태나들이를 즐길 수 있었던, 그리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공간 인연, 왕송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