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만나는 대구 비밀화원, 화원나루공원 산책길
한동안 연락만 주고받고 얼굴을 못 본 지 꽤 오래된 대학원 선배 형을 만나러 3년 만에 다시 대구를 찾았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멀리서 와 주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던 터라 이번에는 큰 맘먹고 대구행을 결정했지요. 서로 일정을 조율할 때 형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기다리 봐라. 이번에 오면 대구 속살을 보여줄게...!!"
왠지 모를 궁금증이 커집니다. 그동안 로컬 여행에 관심이 있는 형 덕분에 몇 차례 대구를 드나들며 여러 장소를 깊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숨겨진 대구 속살을 보여준다고 하니 그곳이 어떤 곳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대구행 길을 나섰지요.
형을 만나고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화원나루공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일대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북 고령을 마주 보고 있는 대구 외곽지역이지만 낙동강 물길을 끼고 온갖 물자가 바쁘게 드나들었던 옛 사문진 나루터 자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대구시민이 즐겨 찾으며 추억을 만들어가는 화원동산을 품고 있으며 대구 3대 물길에 해당하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인근 달성습지와 함께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생태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화원유원지와 가볍게 첫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구 물길을 걷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금호강도, 낙동강 중상류 일대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 모두 처음이라 이곳이 어떤 곳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렇게 외지인은 잘 알지 못하는 대구의 비밀화원, 화원나루공원 산책길을 시작합니다.
화원나루공원을 거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낙동강-금호강 합수지역 일대를 바라보며 걷는 수변공간 산책로이고 또 다른 길은 이 곳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화원공원을 걷는 산책로이지요. 두 길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 어느 쪽부터 시작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는 난생처음 만나는 이곳 물길에서 어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해서 수변산책로를 먼저 걷기 시작했지요. 수변산책로를 을 걷다 보면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생물종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걸으며 관찰하다 보면 귀하고 귀한 흑두루미부터 시작해 수달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서식지로 삼고 찾아드는 다양한 생명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하니 '나도 혹시 이 친구들을 오늘 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가 높아집니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가장 먼저 낙동강 물길이 만들어 낸 모래톱 풍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강 건너 저 일대는 경북 고령군이라고 하니 강 하나를 두고 지역이 달라지는 공간감도 익힐 수 있는 좋은 지점입니다. 그리고 모래톱 위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는 대백로와 여러 오리들 모습이 보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개체수가 많지 않고 건강하고 깨끗한 완벽한 환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곳 역시 야생조류들이 생을 이어가고 있는 소중한 공간임은 분명합니다.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걸으며 바라본 강물 위에는 오리 무리가 한데 뒤섞여 헤엄치고 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어떤 친구들이 와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외에 흰죽지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던 순간입니다.
오리들 무리 속에서 뭔가가 움직거리다 물속으로 휘익하고 잠수해 사라지는 친구가 있으니 바로 겨울철새 논병아리입니다. 그 옆으로는 십여 마리 물닭 무리가 오리 떼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형과 함께 기록사진을 남기던 도중 무리에서 벗어나 나 홀로 행동을 하는 물닭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바로 코 앞에서 물닭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낙동강 펄밭 위에서 기꺼이 멋진 모델이 되어준 이 친구 덕분에 재밌는 물닭 발자국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었네요.
한참을 걷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화원나루공원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소인 화원동산을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옵니다. 뒤를 돌아서는 순간 여태까지 앞만 보고 가느라 챙기지 못했던 이 곳 풍경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바로 해기운이 서서히 약해지며 화원나루공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늦은 오후 풍경입니다.
형 말로는 이 곳이 해넘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조망장소라고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데다 해가 떨어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형이 말한 최고의 해넘이 순간은 기약할 수 없지만 저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제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게 잠시 해, 구름, 강물 그리고 다리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각자 말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겨봅니다.
낙동강 물길 산책을 뒤로하고 화원동산을 향해 갑니다. 수변산책로와 화원동산을 연결하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수변산책로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숲길 산책을 즐길 수 있지요.
제일 기억에 남는 반가운 순간은 남쪽에 먼저 찾아온 봄을 미리 만났던 그 순간입니다. 공원에 들어서자 매화나무에 매화꽃이 한가득 피어있습니다. 길고 긴 무채색 겨울을 지내며 한동안 보지 못했던 화사한 봄색깔을 보니 그동안 무거웠던 겨울 무게가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매화꽃 사진을 찍은 후 가까이 매화나무에 다가섭니다. 그리고 매화나무를 지나가는 순간 옆에서 형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꽃향기 맡아봤나? 매화향이 이렇게 깊을 줄 몰랐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이제껏 매화꽃을 그렇게 수없이 봐 왔으면서도 매화꽃 향기를 제대로 맡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매화꽃 향기를 한껏 들어마시며 생애 첫 매화꽃 향기를 만끽합니다.
매화나무를 뒤로 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노란 영춘화 꽃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개나리와 달리 영춘화 꽃을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통조경 문헌에 단골로 등장하는 영춘화를 여기서 만나니 길을 걷다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냥 반갑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영춘화 꽃을 살포시 만져도 보고 계속 들여다보며 이 모습 저 모습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이제 형이 소개한 최종 목적지인 화원 전망대에 도달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아까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장소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천천히 전망대 꼭대기에 걸어 올라갑니다. 낙동강과 금호강, 그리고 지역 하천인 진천천 세 갈레 물줄기가 한 데로 합쳐지는 모습부터 시작해 달성습지를 포함한 저 먼 곳까지 쭉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여행의 정점을 찍습니다.
이제 서서히 해가 떨어지며 어둑어둑해집니다. 동대구역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화원공원을 내려올 때 우리 발걸음을 붙잡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해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 먹이 활동에 분주한 동물 친구들입니다. 한쪽에서는 청서가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동고비 울음소리가 박새, 직박구리, 까치 소리와 어우러져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전해져 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청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럴 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귀로 먼저 새를 만나봅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 소리 하나하나를 풀어낸 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활동 중인 새소리 주인공을 만날 수 있지요. 그렇게 화원동산에서 내려오는 길 내내 마지막 자투리 시간을 내어 여기에 살고 있는 청딱따구리, 동고비, 까치, 박새, 직박구리, 참새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마 전 제가 경험했던 모든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장소를 경험하는 과정이란 일이 참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더군요. 어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니던 가족여행,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소풍, 수학여행 같은 학교 여행,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나 홀로 여행, 동반 여행, 그리고 출장 여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요.
그 외에도 장소와 연을 맺는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바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는 방문 여행입니다. 가까운 인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와 연이 맺어지는 그런 과정이 담긴 여행입니다.
대구라는 도시가 그런 곳 중의 하나이지요. 묘하게도 대학 친구, 군대 동기, 그리고 대학원 동기 누나와 선배형에 이르기까지 가깝고도 소중한 대구 인연이 그때그때마다 만들어졌지요. 덕분에 일상생활 속에서 이따금 이들 인연을 만나러 대구를 오가는 기회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대구에 관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 올 수 있었답니다.
이번에는 형 덕분에 외지인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숨은 여행지인 화원나루공원을 만날 수 있었고, 오감을 통해 이 곳을 제대로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지요. 만남의 깊이가 조금 색달랐던 이번 여행 때문일까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여행 잔상이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집니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다시 이곳을 꼭 찾아와 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좋은 인연 따라 만들어진 공간 인연, 화원나루공원"
"처음으로 오감 여행을 제대로 경험한 여행지 인연, 화원나루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