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을 출발한 익산행 열차는 잠시 달리다 또 다른 서울관문인 영등포역에 도착합니다. 영등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행 이야기가 궁금해 여행지도를 꺼내봅니다. 언제나 낭만이 넘치는 한강 여행 중심지인 여의도, 옛 철제상가가 멋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문래동 창작촌, 영등포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을 찾아 떠나는 이색 미술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등포역에서 시작할 수 있는 도심하천 도보여행 코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서울 생태, 역사, 문화를 천천히 걸으며 '느림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서울 두드림길(옛 걷고 싶은 서울길) 여행이 그 주인공이죠. 오늘은 영등포역에서 출발해 영등포구, 구로구, 양천구를 넘나들며 서울 두드림길이 품고 있는 '한강지천길 도림천 코스'와 '서울 둘레길 6코스 안양천'을 만나는 장항선 기차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장항선 기차여행 두 번째 정차역, 영등포역
도림천 물길 따라 안양천 가는 길, 한강지천길 도림천 코스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와 15~20분 정도 걸어 내려오거나, 전철을 타고 다음 역인 신도림역에 내리면 '한강지천길 도림천 코스'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걷기 여행을 시작하기 전 주위를 천천히 살펴봅니다. 오랜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에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이 곳과 첫 연을 맺는 순간입니다. 지도를 보니 짧은 징검다리만 건너면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넘어갈 수 있는 재밌는 곳입니다.
영등포구와 구로구 경계선, 도림천 풍경 이모저모
하천 산책로 옆에 한가득 핀 봄까치풀꽃, 냉이꽃, 꽃다지를 만나며 도림천 물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도중에 백할미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인사를 건네 옵니다. 그리고 흰뺨검둥오리 한쌍이 날아오더니 도림천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도림천에서 만난 자연 친구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이곳 도림천도 야생동식물이 생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연생태 공간입니다. 아직 5월이 채 안되었는데도 여름철새인 검은딱새가 벌써 이곳을 찾아왔더군요.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이 친구를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아 이 친구 활동하는 모습을 실컷 지켜보았던 4월 봄날 오후였습니다.
도림천에 찾아온 반가운 여름 손님, 검은딱새 (여름철새)
서울 둘레길 6코스, 안양천
이렇게 20분 정도 놀멍 쉬멍 걷다 보면 길은 어느새 서울 둘레길 6코스인 안양천으로 이어집니다. 도림천이 생을 마치고 안양천에 합류하는 합수 구간인 이곳에서 잠시 안양천 물길을 바라봅니다. 오늘 걷기 코스가 한눈에 들어오지요. 안양천 상류 쪽으로는 고척 돔구장이 보이고, 한강 쪽으로는 목동 아이스링크가 보입니다.
서울 둘레길 6코스, 안양천 풍경
신정교-목동교 구간을 천천히 거닐며 안양천에 찾아온 4월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봄이 깊어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펼쳐진 자연 시간은 아직 환절기입니다. 봄, 여름, 겨울이 섞인 채 어우러지고 있지요. 흰뺨검둥오리, 괭이갈매기, 까치와 같은 텃새 친구들 뿐만 아니라 여름을 여기서 보내기 위해 찾아온 여름 손님인 쇠백로, 중대백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산책길 도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되새, 물닭, 청둥오리, 비오리, 민물가마우지, 왜가리는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안양천에 남아있는 겨울철새 친구들입니다.
서울둘레길 6코스, 안양천 신정교-목동교 구간에 펼쳐진 자연친구들 이야기
서울 둘레길 6코스 별책부록, 실개천 생태공원과 안양천 뚝방 벚꽃길
서울 둘레길 6코스 안양천 신정교-목동교 구간에는 별책부록 같은 공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양천구에서 만든 '실개천 생태공원'과 영등포구에서 조성한 '안양천 뚝방 벚꽃길'입니다. 단조로울 수 있는 안양천 걷기 여행길에 변주를 주는 그런 곳이지요.
실개천 생태공원은 그냥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안양천 둔치 공간을 멋진 공원으로 바꾸어 놓은 지역재생 공간입니다. 안내표지판에 의하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무장애 산책로인 동시에, 두꺼비를 포함한 양서류 이동과 서식까지 고려한 생태통로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앞으로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하고 싶은 장소로 제게 다가온 순간이기도 하지요.
구로구 실개천 생태공원
목동교를 건너 구로구에서 다시 영등포구로 되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안양천 산책로 대신 안양천 둑길을 통해 신도림역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이제는 여의도 벚꽃 축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서울 대표 벚꽃길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지요. 4월 초 끝도 없이 길게 쭉 뻗은 벚나무 터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를 걸으며 오랜만에 '서울의 봄'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안양천 뚝방 벚꽃길
영등포역 테마여행, 서울 두드림길 4월 나들이를 마치며
여의도를 드나들 때 이외에는 그냥 늘 스치듯 지나다니기만 했던 영등포였는데 오늘에야 처음으로 이곳을 깊이 느끼고 바라보며 거닐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며 익숙해졌던 중랑천과는 같은 듯 다른 흥미로운 '한강지천 물길여행'이었습니다. 이제 이곳 봄 풍경은 제대로 만나봤으니 앞으로 여름, 겨울에 펼쳐질 도림천-안양천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그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