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 경제학상 시상식에서 이변이 일어납니다. 사상 최초로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도 놀랄 일이었지만, 주류 전통 경제학이 전제해 온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행동경제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양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왔다면 행동경제학 핵심이론인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가정'은 파격적이고 놀랍기만 한 내용이 아닙니다. ‘알면 바르게 행한다’라는 이성 중심주의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철학은 오래전부터 경험과 이성이 가진 한계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행’을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오류는 무지에서 오기 때문에 제대로 알기만 하면 인간은 실수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철학은 ‘알면서도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애초에 인간은 결함이 많은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앎'과 더불어 '앎을 실천하는 지행합일'이 꼭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동양문화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불-도 3교 모두 '수행을 통해 완전한 인간상에 도달하는 길'을 추구합니다. 유가는 교육과 수행을 통해 도달해야 할 성인의 길'을 강조합니다. 도가는 각자 타고난 능력과 본성대로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합니다. 불가 사상은 탐(욕심), 진(성냄), 치(어리석음)를 떨쳐내며 깨달음에 이르는 부처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애초에 잘못과 실수로 가득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행합일이라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의에서 이야기하는 오장육부 불균형론
이제마 선생이 창안한 사상의학은 의학에 음양사상을 접목한 독자적인 의학체계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요. 음양을 나누면 노양, 소양, 소음, 노음이라고 하는 사상(四象)이 만들어지는데, 사람마다 타고난 기본 체질을 사상으로 구분해 태양인(太陽人), 소양인(少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음인(少陰人)으로 나누었습니다. 사상체질은 조습한열(燥濕燥濕)이라고 하는 대표 성질로 구분합니다. 태양인은 조(건조함)가 주인인 체질이며, 태음인은 습(습함)이 주인인 체질입니다. 소양인은 열이 주인인 체질이며, 소음인은 한(차가움)이 주인인 체질이지요.
조습한열이라고 하는 체질 특성은 단지 질병과 건강 측면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과 성향도 관여한다고 합니다. 건조한 체질인 태양인은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리더 기질이 있으나, 그게 너무 지나쳐 독재자 성향으로 흘러가는 게 약점이라고 합니다. 습체질을 가진 태음인은 매사에 진중하고 끈기가 뛰어나나 겁심이 많아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주저하는 성향이 있답니다. 열체질인 소양인은 추진력은 뛰어나나 뒷마무리 하는데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차가운 성질이 주된 특성인 소음인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과 꼼꼼함이 강점이나 활동성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체질별로 성질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8체질 창시자 권도원 박사에 의하면 타고난 체질 차이는 내부 장기의 강약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합니다. 태양인은 천성적으로 폐가 강한 대신 간이 약하고, 태음인은 간이 건강한 대신 폐가 약하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소양인은 위가 최강 장기인 반면 신장과 비뇨기가 최약 장기이며, 소음인은 신장과 비뇨기가 강한 대신 위가 가장 취약한 체질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부 장기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상의학과 8체질학 출발지점입니다. 체질에 따라 특정 장기가 강하고 약한 구조적 불균형이 있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취약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강한 장기는 더 강해지지 않게 적당히 힘을 빼주고, 약한 장기는 더 약해지지 않도록 보해주는 것이 한방에서 강조하는 건강관리 기본 원칙입니다.
타고난 신체 장기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내 체질 특성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생활방식을 관리해야 합니다.
명리에서 이야기하는 불완전한 운명론
인간 운명을 다루는 명리 역시 '불완전함'이라는 시선으로 사주팔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연월일시라고 하는 사주팔자는 8글자인 반면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십신 요소는 10개입니다. 그래서 사주팔자 만으로는 완전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애초에 충족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요소가 부족한 상태로 이 세상에 나왔기에 우리 삶과 운명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주팔자 조합이 그나마 잘 구성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인생이 고만고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소위 상위 20%와 하위 80%에 대한 실증사례를 다루는 파레토 법칙을 명리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주를 해석하는 데 있어 신강 사주가 있고 신약 사주가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따라 내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용신과 기신이 결정된다고 하지요. 명리에서 이야기하는 길흉화복 역시 앞서 한방에서 이야기하는 '비보'원리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나를 뜻하는 일간 힘이 강한 신강 사주는 내 힘을 적당히 눌러주면서 빼주는 것이 좋은 방향이고, 일간 힘이 약한 신약 사주는 내가 가진 원래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좋은 운으로 해석합니다.
명리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우리 운명이란 것이 100%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동양철학에서 강조하는 '바른 삶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나쁜 순간이란 것을 그냥 견딜만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타고난 명이란 게 있기에 액운을 완전히 피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평소 얼마나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죽을 순간은 어디 하나 부러지는 정도로, 부러지는 것은 생채기가 나는 정도로 그렇게 운명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타고난 명 특징을 잘 알고 거기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고, 특히 나쁜 운이 올 때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명을 뛰어넘기 위해서 늘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