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이 밭 저 밭을 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서쪽으로 저만치 가 있습니다. 두룩골 밭일만 어서 마무리하고 저녁 차리러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근 숲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옵니다. 학교 갔던 내 새끼들이 엄마 찾으러 두룩골까지 왔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서 들려오는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소리는 한두 명 소리가 아닙니다. 마을 친구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아이들 챙겨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때, 두룩골에 울려 퍼지던 아이들 노는 소리가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밭일을 정리하고 논두렁 길을 따라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짓고 밥을 먹던 도중 아까 일이 생각나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어봅니다.
"오늘 학교 마치고 오는 길에 동무들이랑 두룩골에 놀러 온겨?"
"아녀유, 오늘은 OO이네 집에 모두 모여서 같이 놀았어유."
분명히 밭에서 애들 뛰노는 소리를 들었는데, 동네 애들 모두 두룩골 근처도 안 왔다는 얘길 듣고는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요.
그날 이후 두룩골 밭에서 일을 할 때 종종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특히 비가 그치고 난 오후나 해질 무렵이 되면 애들 소리가 더 잘 들렸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뜬 내 새끼를 땅에 묻어야 하던 날 두룩골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숲에서 들려오던 아이들 노는 소리 정체를 이해했지요.
그것은 바로 두룩골에 묻힌 아이들 귀신 소리였답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고 출생신고나 사망신고 개념조차 별로 없던 그 시절, 마을 사람들이 자기 애가 죽으면 두룩골로 데려와 묻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뜬 마을 아이들이 한데 모여 묻힌 곳이 바로 두룩골 숲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죽은 아이들 영혼이 생전에 하지 못한 놀이를 하느라 까르륵 즐겁게 웃으며 뛰노는 소리가 들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외할머니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로 맘껏 뛰어놀지 못하고 두룩골에 묻혀야 했던 어린아이들의 한을 담고 있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