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던 그 시절, 다른 이모들은 다 잠자리에 든 시간 유독 엄마는 바느질하는 외할머니 옆에서 이야기 나누는 걸 즐겼답니다. 통금시간 직전에 외할아버지가 동네 마실 갔다 오신 후 엄마에게 '수다 좀 그만 떨고 그만 자라' 고 하실 만큼 모녀 지간에 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요. 그때 그 시절 외할머니가 엄마가 들려준, 그리고 엄마가 다시 저에게 전해준 오서산 호랑이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오서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호랑이 새끼들을 발견하고는 너무너무 예뻐서 마을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신기하게도 호랑이 새끼를 데려간 집만 딱딱 집어 내 소를 물어 죽였습니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아기 호랑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고 그제야 마을이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군인지 우리나라 군부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서산에 군사기지가 들어서고 헬기장이 만들어지던 그때였다고 합니다. 인부들이 산속에 숙소를 짓고 기거하며 공사를 진행했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바람에 인부들이 무서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공사가 중단되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포수들을 고용해 불러들였고 한동안 총 소리가 울려 퍼지며 호랑이와 실랑이을 벌인 이후 호랑이가 오서산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서산에 분명히 호랑이가 살았다니까! 그리고 호랑이 참 영험하지 않니? 어찌 지 새끼 데려간 집이 어딘 줄 알고 거기만 딱딱 찾아내 지 새끼 내놓으라고 복수를 하는지!
이야기 #2 액운을 막아주는 호랑이 그림
실제 호랑이는 아니지만 집에도 30년이라는 시간이 담긴 호랑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엄마는 호랑이 그림 한 점을 들여왔습니다. 그리고는 현관 앞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면서 호랑이가 집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주며 지켜준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후 이사를 몇 번 하는 동안에도 호랑이 그림은 늘 변함없이 우리 집 현관 앞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림 속 호랑이를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를 온 직후 아버지가 액자를 유심히 보시더니 한 말씀하십니다. 순간 우리 집에 모처럼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