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춘장대가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들
서천 춘장대 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여행하는 방식 그대로 기차나 차를 타고 서천군으로 들어온 후 이곳을 찾아오는 길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보령과 서천을 잇는 부사방조제를 쭉 따라 직접 들어오는 방법이지요.
보령 장안해수욕장에 있는 소황사구 사례조사를 마친 후, 왠지 바다를 보며 걷고 싶어 부사방조제를 걸었습니다. 한번 걷다 보니 되돌아 올 생각이 사라집니다. 의외로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바다 건너 서천 땅이 궁금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지요. 그렇게 보령과 서천 사이에 놓여있는 부사호를 가로질러 서천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춘장대입니다.
지도상에서 이름으로만 만났던 그곳이 점점 가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잠시 부사방조제 위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생애 첫 춘장대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놓여있는 춘장대 모습이 궁금해 조금 더 가까이 춘장대 품 안으로 들어갑니다.
춘장대 바다를 만나러 가기 전 먼저 해수욕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녹지공간을 둘러봅니다. 흔히 춘장대를 설명할 때 해송과 아까시 꽃이 아름다운 곳으로 부릅니다. 곳곳에 소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울창한 초록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곳에 따라 산책이나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고 캠핑사이트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춘장대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옛날 보릿고개를 넘어가느라 고생할 때 하얗게 피는 꽃이 꼭 하얀 쌀밥처럼 닮았다고 해서 이팝나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무입니다. 요즘에는 하얗게 만개한 꽃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가로수이기도 합니다. 5~6월 춘장대 입구 부근에서 만날 수 있는 새하얀 이팝나무 꽃터널은 파란 하늘과 참 잘 어울리는 멋진 풍경입니다.
녹음이 짙은 춘장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여러 야생조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참새, 까치, 멧비둘기, 박새, 곤줄박이 등 많은 새 친구들이 눈 앞을 왔다 갔다 합니다. 이번에는 바로 앞에서 오색딱따구리가 땅에 내려와 먹이를 먹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지요. 깨끗한 곳에서만 서식을 한다는 물까치 소리가 춘장대 해수욕장 곳곳에 울려 퍼지더니 드디어 한 녀석이 저에게 사진 한 장 찍으라고 인심을 베풀어줍니다.
드디어 춘장대 바다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광장을 지나 철새 조형물이 있는 쪽으로 걸어 들어오니 바닷가로 나갈 수 있는 진입로가 보입니다. 잠시 멈춰 선 후 커피 한잔 마시며 바다 풍경에 푹 빠져들어갑니다. 서해바다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춘장대입니다. 왼쪽으로는 멀리 홍원항이 보이고 오른쪽로는 야산과 갯바위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본격적으로 춘장대 바다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때마침 썰물 시간이라 춘장대에 모래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 있으니 바로 춘장대 바닷가 주인공 갈매기입니다. 썰물 시간을 맞이해 바다와 모래갯벌을 열심히 오가며 먹이활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예전에 갯벌교육을 받을 때 충남에서 게를 '그이'라고 부른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이가 갯벌에 집을 짓기 위해 구멍을 만들기 때문에 갯벌이 살아 숨 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갯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그이 덕분에 갈매기를 비롯한 여러 새들이 부족함 없이 먹이활동을 할 수 있어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도 그때 배운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이를 갯벌의 주인공이자 관리인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오늘 그이 모습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지켜봅니다.
춘장대 갯바위를 둘러본 후 다시 광장 쪽으로 되돌아다 보면 '부사호 가는 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습니다. 표지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오면 방풍림으로 조성한 드넓은 소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소나무 숲길을 따라 계속 안쪽으로 들어오면 춘장대에 숨어 있는 비밀 여행길인 철새 나그넷길이 나타납니다.
옛날 무장공비가 침투해 온 루트라 군부대에서 비공개로 관리해 오던 곳인데, 2012년부터 시범사업으로 개방을 시작하면서 지역주민과 여행자 품에 되돌아온 그런 공간입니다. 서천갯벌을 상징하는 천연기념물 검은 머리 물떼새를 이용해 표지판을 사용한 모습도 꽤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이곳 산길을 걷다 보면 춘장대가 바다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짙은 아까시 꽃향기도 맡고,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와 나무 꽃을 들여다보면서 말 그대로 '쉼'에 푹 빠져들지요. 때마침 머리 위에 나타나 옥구슬 굴러가듯 예쁜 목소리로 멋진 노래 한 곡조를 뽑아준 방울새 덕분에 숲길 산책에 운치가 더해집니다.
충남 일대 서해안 해수욕장은 대부분 넓은 백사장이 고루 분포하고 배후에는 해안 사구가 발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개발을 위해 모래를 채취하고, 인근 배후지에 해안 도로과 시설물을 만들고, 방파제 개발로 인해 바닷길이 바뀌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모래가 유실되고 백사장 일부가 황폐화되어 가고 있지요. 이는 비단 서해안뿐만 아니라 부산 해운대와 강원도 일대 동해안 여러 해수욕장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 춘장대에서 다른 여느 해수욕장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곳에 설치된 해안사구 보호장치(모래포집기)입니다. 그동안 해안사구 보호지역이나 복원지역에서 모래포집기를 사용해 해안사구를 복원하는 사례는 봐 왔지만, 일반 해수욕장에서 모래포집기를 이용해 해안사구를 보전하는 사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이걸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일까요? 그 어떤 유명 해수욕장보다도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는 이곳 춘장대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춘장대 해안사구를 거닐며 다른 해수욕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해안사구 식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분홍색 갯메꽃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멀리 갯바위 쪽 바닷가 산비탈 아래에는 모래지치와 갯완두가 사람 눈을 피해 조용히 꽃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5~6월 바닷가 주인공인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소설 상록수에서 동혁과 영신이 사랑을 확인하던 장면에 등장하는 해당화, 그 장면을 읽으며 해당화는 제가 가장 아끼는 꽃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지요. 바닷가에 핀 해당화를 보며 익숙한 동요 한곡을 흥얼거려 봅니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동요 바닷가에서 중에서
다시 백사장 중심부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없어 멀리 보이는 홍원항까지 못 가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다시 춘장대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부사호를 건너 춘장대로 들어오던 첫 순간, 해안사구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 바닷가를 거닐며 만난 해안사구와 여러 생명들, 그리고 숨겨진 비밀 숲길인 철새 나그넷길에 이르기까지 춘장대란 곳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춘장대가 고맙고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하루입니다. 누군가 제에게 춘장대에 대해 물어본다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춘장대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해안사구 식물이 화려하게 꽃이 피고,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세상을 뒤덮는 5~6월이에요. 이때 춘장대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참 모래갯벌에서 '그이'를 만나는 시간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