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이 되던 해 일입니다. 엄마한테 구구단과 시계 보는 법을 배우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생애 첫 손목시계를 사 주셨습니다.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그토록 갖고 싶었는데 드디어 저에게도 손목시계가 생겼습니다. 더구나 시계를 볼 줄 아니 더 신이 났지요. 한동안 잠자리에 들 때도 시계를 차고 잘 정도로 애지중지 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어린아이답게 마냥 들떠 있었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동네 친구와 같이 놀이터에서 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와 놀던 중 무심코 시계를 풀어놓고 손에 들고 있다가 실수로 땅에 떨어뜨렸지요.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처음 보는 어떤 형이 우리 쪽으로 막 뛰어오더니 큰일 난 것처럼 다급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위험해!! 지금 시계가 땅에 떨어져서 충격을 받아 곧 폭발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해."
순간 겁이 막 나기 시작합니다. 당장이라도 펑하고 시계가 폭발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울먹거리며 형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이 이렇게 위로해줍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 나한테 시계를 주면 내가 폭발하지 않도록 할게. 그리고 옆에 있는 너, 네 것도 혹시 모르니 내가 폭발할지 아닌지 확인해 줄게"
두 어린이는 순순히 손목시계를 형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받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 형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요. 그러나 그 형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빈 손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고 나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나 엄마한테 혼이 날까 봐 말도 못 하고 있던 그때, 저랑 같이 있었던 친구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그제야 엄마는 제가 무슨 일을 당하고 왔는지 알아차리셨지요.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내일 시계 찾으러 가자고 하시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다행히 친구 녀석이 그 형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나 봅니다. 친구 엄마와 엄마는 날이 밝자마자 그 형에 대해 수소문을 한 끝에 그 집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집 할머니와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난 이후에 손목시계를 다시 되돌려 받았습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제 손을 떠났던 손목시계가 다시 저에게 되돌아왔던 웃지 못할 7살 추억입니다.
7살에 당한 첫 사기로부터 배운 것
엄마와 저 사이에 평생 우려먹을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졌던 순간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사람은 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거기서 얻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커가는 동안에 어떤 일이 있으면 두려움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결정하거나 숨기지 말고 부모님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막무가내로 저를 야단치지 않고 조용히 지혜롭게 수습을 해 준 엄마 덕분에 7살에 당한 첫 사기 경험은 저에게 '가르침을 얻은 순간'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과 경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제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날 일에 담긴 교훈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날 제가 당한 일을 비롯해 크면서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파악한 '사기'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서운 큰일이 닥치니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해야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위협형 사기, 또 다른 하나는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자기를 믿고 따르라는 유혹형 사기입니다. 위협이든 유혹이든 어떤 특정 상황에 사람을 몰아놓고 내가 가진 것을 스스로 내놓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기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훅 날아들어올지 모르는 순간이기에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지요. 단 하나 확실한 건 두려움이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황을 늘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저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생활지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