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출발한 장항선 열차는 영등포역과 안양역을 지나 수원역에 도착합니다. 예전에는 수원이란 곳이 멀게 느껴져 쉽게 와 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장항선 열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수원역을 드나드는 일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수원역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여행 이야기는 꽤 다양합니다. 수원역을 출발해 걸어서 15분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받은 수원화성 성곽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인 광교호수공원, 서호공원을 방문해 호숫가 나들이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원시민들이 애용해온 전통시장 여행도 수원시가 추천하는 수원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루어왔던 수원화성을 가 보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넉넉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겼을 때는 이곳까지 올 시간 여유가 없어 계속 놓쳐 왔던 수원화성과 드디어 첫 연을 맺는 날입니다.
장항선 기차역 네 번째 정차역, 수원역
수원 화성 성곽길 산길 여행
수원역을 벗어나 수원 화성 성곽길 트래킹 시작점 중 하나인 경기도청에 도착합니다. 이곳에는 수원시 벚꽃 명소 중 하나인 벚꽃길이 있습니다. 자연을 느끼며 도청 외곽을 거닐 수 있는 이 길을 따라 도청 후문방향으로 가다 보면 수원 화성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산책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도청 뒷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팔달산 숲길은 수원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심 속 자연공간이기도 합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야외학습을 오기도 하고 동네 주민분들이 편하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러 즐겨 찾는 그런 곳이지요. 몇 해 전 경기도청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이 코스를 발견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연이 닿았습니다.
경기도청 외곽 산책길(위), 팔달산 숲길 산책로 모습 (아래)
숲길에 들어서니 팔달산 곳곳에 울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울새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드문 나그네새입니다. 울새라는 이름을 가진 새답게 구슬 방울이 쉴 새 없이 굴러가는 듯한 예쁜 목소리를 갖고 있지요. 원래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기고 소리만 내는 수줍은 친구라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접어둡니다. 주변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오랜만에 들어보는 울새 소리를 감상해 봅니다.
팔달산 숲길에서 만난 울새 소리
숲길을 걷다 보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빌려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옆에서 갑자기 시끌벅적 난리가 난 유치원 친구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청설모 세 마리가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화서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숲길 산책로 끝 지점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여름철새인 노랑딱새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개발이 비켜간 덕분일까요? 일반 도심공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울새나 노랑딱새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이곳 산책로가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입니다.
팔달산 숲길에서 만난 자연 친구들
수원 화성 성곽길 물길여행, 수원천 산책로
수원 화성은 수원천이 화성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수문을 북쪽과 남쪽에 각각 설치했다고 합니다. 장안문을 지나 북동포루를 지나면 북수문인 화홍문과 경관이 수려해 방화수류정이라는 이름을 얻은 정자가 보입니다. 방화수류정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원천과 인공연못인 용연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여기부터는 마음 가는 대로 코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용연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가는 피크닉 여행을 할 수 있고, 성곽 트래킹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수원천 산책로를 따라 남수문이 있는 팔달문 부지까지 수원화성을 가로질러 가는 물길여행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북수문과 남수문, 그리고 수원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 모습
성곽 트래킹 대신 수원천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딱새와 직박구리가 날아오더니 바로 코 앞에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눈을 돌려 바라본 수원천 물길에는 쇠백로 한 마리가 주위 사람들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으며 모델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남수문 부근에 도착하니 돌고기를 비롯한 여러 물고기 모습을 지척에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천길을 걷는 내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왜가리와 백로 친구 모습을 만나는 건 화성 성곽길 물길 구간에서 맛볼 수 있는 묘미 중 하나입니다.
화성 성곽길 물길구간, 수원천 친구들
수원천 중간 부근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물칭개나물을 만난 반가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물칭개나물은 우리나라 물가나 습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도감에 적혀 있지만 실상 밖을 돌아다녀보면 쉽게 보기 힘든 친구입니다. 물칭개나물은 연한 자주색 바탕에 자주색 줄이 있는 단아함이 느껴지는 꽃을 피워냅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오랜만에 만난 물칭개나물 꽃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아함이 느껴지는 우리 야생화, 물칭개나물 꽃
수원 화성 성곽길에서 만난 자연 친구들
화성 성곽길에서 자연을 느끼는 방법은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보통 여행자들처럼 성곽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보통 화성이 품고 있는 건축물을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걷는 코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은 만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수원 화성을 제집 삼아 살아가는 제비 친구가 날아다니고 주변 풀밭에는 꿀을 찾기 위해 찾아든 나비와 벌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곽 돌 틈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강인한 풀꽃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답니다.
성곽 트래킹 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 친구들
계속 이어지는 성곽길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화성 안쪽으로 군데군데 조성한 산책로를 거닐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연학습을 할 수 있도록 팻말을 달아놓은 식물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사람들 눈을 피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제비꽃 같은 야생화 친구도 볼 수 있습니다. 계절마다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 나무 꽃도 감상할 수 있는 화성 속 소공원 산책로입니다.
잠시 성곽길에서 벗어나 이 길을 걷다 보면 참새, 박새, 까치, 멧비둘기와 같은 텃새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친구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흰배멧새입니다. 봄, 가을 이동철에 우리나라에 잠깐 들렸다가 떠나는 나그네새라 늘 볼 수 있는 친구는 아닙니다. 더구나 눈 앞에 모습을 이렇게 드러내 놓고 다니는 일도 흔치 않은 터라 저 역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요. 수원 화성 성곽길에서 만난 반가운 인연 흰배멧새를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수원 화성 안길 산책로 풍경
성곽길 곳곳에 장안공원, 화서공원, 용연과 같이 화성 바깥쪽에서 수원 화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곽 안쪽 길을 걸으며 화성을 보는 것과 바깥길을 걸으며 화성을 보는 것은 느낌이 꽤 다릅니다. 화성 지붕 위에 앉아 우렁차게 '까악 까악' 울어대는 까마귀나 용연에 자리를 잡고 물고기를 잡아먹는 왜가리를 만나는 건 멋진 보너스 같은 순간이지요. 이렇게 화성 안팎을 오가며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화성이 가진 매력 중 하나입니다.
수원 화성 바깥길 풍경 이모저모
수원 화성 성곽길 자연탐방 여행을 마치며
수원 화성 성곽길 트래킹 마무리는 자연스럽게 화성 행궁에서 맞이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에 놀랐고, 기대했던 것보다 다양한 생물종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던 하루였습니다. 다리가 아파 화성 행궁을 자세히 둘러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고 행궁 전통정원 돌계단에 걸터앉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커피 한잔 마시며 바라본 화성행궁 모습이 참 고왔습니다. 서울처럼 초고층 건물 사이에 궁궐이 갇혀 있는 느낌이 아니라 나트막한 현대식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잘 들어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지요. 등 뒤에 자리 잡은 팔달산 산새 소리를 들으며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수원 화성 인연을 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