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과 삶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고, 나름의 노력을 하며 나날을 지새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삶을 이루기 위해 애써 마음을 부여잡고 버티며 묵묵히 걸어갔다. 그러나 스스로 짊어진 많은 부담과 현실의 무게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번아웃이 왔고, 회의감에 빠졌다. 나의 인생이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난 오로지 살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다.
사실 난 겁이 무척 많은 사람이다. 또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며 완벽주의적인 성향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어느 정도 완벽하고 안전한 길을 만든 후에 출발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고 대비한다. 그러다 보니 일련의 과정 속에서 너무나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그에 따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금세 지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실패가 뻔히 보이는 경우에는 관심을 접기도 한다. 어떨 때에는 어차피 안될 일이라며 확정을 짓고, 해봐야 안다는 말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작에 대해 점점 보수적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고, 이러한 내 모습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걷고 난 후, 난 180도 달라지게 됐다.
그곳에 도착한 순간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은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내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같지만 다른 하늘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온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점점 시들어갔다. 하루 평균 25km 이상을 계속 걸으니 피로도가 쌓여갔고, 점차 지쳐갔다.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러자 시야가 조금씩 좁아지고,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이 늘어갔다. 사소한 문제들(배드 버그, 빨래, 날씨, 숙소 등)때문에 신경이 쓰였고, 불쾌감이 들기도 했으며,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고난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상상하며 스트레스받기도 했다. 내가 꿈꾸었던 곳을 왔는데도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나는 지치고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난 계획한 일정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묵묵히 참고 할당량을 채우며 걸어가야만 했다. 나의 몸은 이전부터 쉬어가라고 수차례 경고를 했지만 ‘괜찮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고, 결국 15일 차가 되던 날 족저근막염이 심해졌다. 임계점을 넘은 나의 몸이 걷기를 거부한 것이다.
나는 낙심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모두 틀어질 것이 분명했다. 난 어쩔 수 없이 레온에서 3박을 하게 되었다. 밀린 일기를 쓰기 위해 그동안의 여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아서 속상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이 길을 걷게 됐는데 그동안 너무 기계적으로 걷기만 한 것 같다는 사실에 상실감이 몰려왔다. 이곳에서조차 한국에서 겪었던 고뇌의 과정을 똑같이 반복하고,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난 어떤 직업을 갖던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고, 배웠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허깨비처럼 느껴졌고, 현실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저 지식뿐이었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낙심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곧이어 깨달음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후 순례길에서는 그동안에 놓쳤을 수많은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며 나만의 걸음으로, 보폭으로 다시 걸어 나아갔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는 쓸모없고, 실용성 없는 일이라 하고, 경력이 아닌 단순한 경험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때의 경험은 나다운 것, 진정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또 과거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미래의 시종에서 달아나 현재에 삶에 집중하는 법을 일깨워줬다.
이제 난 26살. 어쩌면 시작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꺼내어 놓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나이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보통의 경우 취미보다는 취준에 할애를 하고, 알바보다는 취업을 하는 때이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도전과 모험보다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한다. 낭만은 사치로 결부되는 듯하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인정해주지 않은 노력을 하며, 또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할만한 몽상가적인 꿈을 꾸며, 그때의 순례자였던 나처럼, 나만의 호흡으로, 나만의 보폭으로, 나만의 걸음걸이로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나 답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과정 속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격언처럼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의 이유는 아니듯이, 창백한 푸른 점처럼 작은 존재일 수 있지만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과학자들처럼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