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계속 미루고 살까
낯선 땅에 가는 것.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있기는 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날 두렵게 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첫 글을 남기기 전, "어떻게 시작해야 아주 멋진 첫걸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어린 시절 검사받아야 할 일기를 쓰는 심정이 되어 잠깐 동안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우려로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고, '지금의 내가 공적인(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을 쓸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걱정이 들기도 했다. 또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게, 첫걸음을 아주 멋지게 내딛고 싶은 '욕심' 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잡념으로부터 벗어나 곧바로 정신을 차렸고, 아주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다. 첫걸음을 내딛는 이 순간, 그저 나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으로 글쓰기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리프레쉬를 하기 위해 지금과 같이 뭔지 모를 불안감과 걱정, 설렘을 함께 안고, 혼자서 처음으로 스쿠터를 대여 해 여행을 했다. 여행 마지막 전날 나는 스쿠터를 반납해야 했다. 일정상 서귀포(남부)에서 제주시(북부)까지 올라가 반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전까지 좋았던 날씨가 그날엔 비가 억수로 내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 내리는 제주도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비 맞으며 스쿠터를 반납해야겠다는 계획을 한 적은 당연히 없다. 정말 예기치 못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그 비를 뚫고 반납을 해야만 했고, 감행했다. 가기 전 나의 심정은 가는 와중에 사고가 나서 죽지는 않을까 싶었다.
어느 정도의 고됨을 짐작은 했었지만 가는 길은 정말이지 지옥이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뺨을 후려갈기는 것 같이 아팠다. 그리고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적인 느낌들은 무뎌졌고, 점점 광기가 나를 휩싸았다. 나는 미친 듯 노래를 부르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때로는 실소한 듯 웃음을 쏟아내며 나아갔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빗소리에서 질주하는 차들의 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함을 즐겼다.' 이런 미친 경험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냥 그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미친 상황에서도 적응을 하는 걸까? 아님 정말 미쳐버린 걸까' 싶었지만 결국 그렇게 희열감? 에 젖은 채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어이가 없는 현실에 쉴 새 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옷이 홀딱 젖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미친 짓이지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그때 당시는 예기치 못한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위험에 빠질만한 위험한 일화였지만, 지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고 다른 방법을 무조건 찾아서 해결했을 일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글쓰기 소재로 쓰기도 하고, 누군가와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나의 이 경험은 어떻게 평가해 볼 수 있을까. 취향의 문제이지만, 내 계획대로 100% 척척 이행되는 여행이 매력적일까, 아니면 여행 중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만나고, 뜻밖의 이야깃거리가 탄생하는 여행이 매력적일까.
아마 첫 글쓰기뿐만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은 '첫걸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욕심, 설렘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 입학, 첫 졸업, 첫사랑, 신분증 첫 발급, 첫 면접, 첫 출근, 첫 퇴사, 첫 해외여행, 다른 여러 모험들처럼 아주 큰 사건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우리는 살면서 아주 다양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일수록 첫 경험에 대한 마음은 불안이나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경험이나 모험에 대한 나의 마음은 설렘보다 걱정과 불편,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새로움은 등한시하고, 익숙함에 노예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통제불능의 상황을 마주하고, 곤란함에 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고, 난감한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서 은근히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황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기를 바라고, 사전에 계획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계획대로 되어가는 상황을 마주하기보다는 뜻밖의, 예외적인 상황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난 글쓰기 여정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 앞서 했던 여러 고민들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떠한 상황이 올지 모르겠지만, 설령 또다시 스쿠터 사건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미래이고, 난 내 눈 앞에 있는 나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이 되려 한다. 저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희뿌연 안개를 두려워하며, 언제까지고 앉아서 저 속에 뭐가 있을지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직접 내 두 발로 그 속을 걷는 사람이 돼보려 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위기가 아니며,
모름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이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