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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25. 2024

만남, 헤어짐

첫 글이니까 본격적인 요가 이야기보다 조금 가볍게 내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처음 요가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2017년이었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우주스타 이효리 님이 제주에서 요가를 하며 삶의 짐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과 모습이 너무 와닿았다. 또 부러웠다. 정말로 요가를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막연히 나도 너무 그러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막상 처음 요가를 시작하려니 너무 낯설기도 하고, 요가원의 환경이 조금은 걱정돼서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며 간간히 해나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그로부터 2년 뒤, 스페인의 어느 작은 마을인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서 누군가에게 직접 배우는 첫 요가를 경험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노을이 질 무렵이 됐고, 요가를 할 사람을 불러 모아 별도의 장소로 안내했다. 사람 수에 비해 무척 아담한 곳이었다. 좁은 공간에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들어가서 조금 협소 하긴 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나는 뒤쪽 구석에 앉을 생각으로 제일 먼저 들어갔는데 그곳에 계시던 요가 선생님으로 보이는 새 하얀 단발머리의 젊은 여성 분이 나를 제일 앞에 앉혔다. 처음엔 무척 당황했고, 어색했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제일 좋은 명당이었다. 딱 그곳에만 일정 시간 동안 노을로 물든 햇살이 창문 틈으로 비쳤는데 이것이 내가 요가를 하는 동안 기분을 훨씬 좋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방안에 사람이 가득 찼을 때쯤, 선생님이 앞에서 향을 태우고 요가를 시작했다. 인요가를 진행했는데 무척 느린 플로우였다. 그가 영어로 진행을 하는 동안 부가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사실 전부는 다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점이 나의 마음을 더욱 편하게 진정시켜 줬고, 몰입시켜 줬다. 햇살과 선생님의 목소리, 솔솔 부는 바람, 나무 타는 냄새, 이 모든 게 완벽히 어우러져 경이로울 만큼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 한국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이곳을 다시 오기 위해서라도 순례길을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에 대한 기록이다. 이렇게 안온한 경험을 한 내가 어떻게 요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후, 바로 몇 개월 뒤 제주에서 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과 순례길에 대한 글을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제주살이를 하러 갔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우연히 요가 선생님을 만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숙소 근처에 이효리 님이 직접 운영하고 가르치는 요가원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다만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외부인보다 주민들만 받으니 안될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됐지만 곧바로 다음날 아침.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그 요가원에 도착했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효리 님이 나를 창 밖으로 한번 보더니 큰 소리로 일단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평소에 요가를 좀 했냐고 물어봤고, 나는 정식으로 배운 적은 거의 없지만 집에서 종종 혼자 수련을 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효리 선생님이 나를 받아주셨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주 3회 그곳에서 수련을 하며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요가인으로써의 삶을 살아보자라는 결심을 만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에게 요가를 처음 접하게 해 준 분을 만나서 수련을 하게 되는 경험은 나에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꾸준히 혼자서 수련을 이어나갔고, 몇 번 더 제주살이를 하며 짧고 굵게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요가원에 가서 요가 수련을 이어나갔고, 그 이후에도 혼자서 꾸준히 수련을 했다.




그동안 요가 ttc 과정을 듣겠다고 결심을 하고 시도한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매번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서 실패했다. 그러던 와중에 올해 다시 한번 결심을 하고 인도로 요가를 배우러 떠나겠다는 다짐을 세우던 때에 정말 우연히 이너마더라는 공간에 나에게 훅 와닿았다.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다. 왠지 인도 말고 여기서 요가를 배우고 싶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본격적으로 요가하는 삶을 살아보기 위해 이너마더에서 요가 ttc 과정을 듣고 있다.




첫 공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처음에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긴장되고, 걱정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간도 편해지고, 함께 수련하는 ttc 선생님들도 편안해지고 있다. 표현은 잘 못하지만 내심 정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매 순간이 소중했고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함께 수련을 이어 나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그만큼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제 느낀다. 이너마더와, ttc쌤들과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났고, 유독 빛났던 가을을 지나 보내니 이제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차디찬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ttc 과정 절반이 넘었다. 이제 5주 후면 정말 끝이 난다. 이 사실이 왠지 벌써부터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같은 날 수련에서 만나면 반갑게 짧은 인사를 하고, 각자의 수련을 마치면 또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 헤어진다. 일주일 동안 수련에서 자주 만나고, 꽤나 오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엔 참 짧은 시간들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러한 시간들이 참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봄날에 수많은 꽃이 피고 지는데 어떤 꽃은 빨리 지고, 어떤 꽃은 천천히 진다. 가을에도 단풍이 제각각 예쁘게 물들기 시작하고 또 제각각 다른 때에 잎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모든 만남과 이별도 그런 것 같다. 제 나름의 때가 있고, 다 다른 법이어서 좀 더 빨리 헤어질 수도, 조금 더 늦게 헤어질 수도 있다. ttc 과정이 끝나게 되면 헤어지는 때가 분명히 오겠지만, 그 순간이 조금 늦게 지는 꽃처럼, 조금은 더 늦게 떨어지는 단풍잎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일이나 물건과의 만남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때가 있는 법인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도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서 내 마음속에서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잘 받아들이면 헤어짐은 정말 슬플 일이 없는 건데도 도무지 섭섭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가와의 만남에서 헤어짐에 관한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왔다. 아쉬워하는 내 마음은 전혀 모른 채, 내 마음과 상관도 없이 정말 속절없이 빠르게 떨어져 버린 단풍과 은행을 보며, ttc의 끝과 같이 올해의 끝을 향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보며 괜히 마음이 더 말랑해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오늘을 끝으로 온라인 하타요가 수업도 매듭지어졌기도 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매 순간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열심히 했는데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요가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정말 모든 것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연속적이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번 느낀다. 인생은 매 순간이 그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의 날들, 매 순간들을 더 잘 대해줘야겠다. 그런데 또 정말 상상조차 싫은 헤어짐,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에 통증이 느껴지는, 온몸에 피가 다 빠지는 것 같고, 정말로 숨이 멎는 이별. 헤어짐이 온다면?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누군가와 또 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만 하는 때가 내 눈앞에 들이닥친다면? 그중 하나인 만약 요가와 영영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그때도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완전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후회가 없으려면, 조금이라도 덜 마음이 아프려면 결국 매 순간이 만남과 동시에 이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어진 순간에 감사를 느끼며 최선을 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요가를 하며 계속 호흡에 집중하고 돌아오는 이유도 이것과 같다. 지금 여기.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최선의 삶이지 않을까.


한 아사나를 만나고 나면 그 아사나에서 반드시 벗어나야만 또다시 다른 아사나를 만날 수 있듯이. 숨을 완전히 내 쉬어야만 또다시 새로운 숨을 크게 들이쉴 수 있듯이.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야만 또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듯이. 이별 끝에 새로운 시작이 있을 테니까. 그것이 또 분명 살아가면서 큰 기쁨이 될 테니까.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헤어짐에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자고 마음을 애써 다잡아 본다.


그래도 내가 요가를 꾸준히 하는 한 요가로 이어진 인연은 오래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효리선생님을 만난 것부터가 나에게 요가는 참 기적 같은 일이구나를 실감하게 해 준 일이니까. 선생님과 헤어질 때 언젠가 요가로 또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헤어졌으니 왜인지 요가로써 또 반드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왠지 모를 믿음이 있기도 하니까.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시련과 아픔, 행복과 기쁨을 잘 보냈기에 내가 지금 여기서 이너마더를 만나고 ttc쌤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마냥 슬프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그동안의 삶에서 단 하나의 사건이라도 빠진다면 이너마더에서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떻게 보면 그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삶이 날 지금 여기로 이끌었다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지금의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더 특별한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시간에, 헤어짐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또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기 위해서도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와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좀 더 잘 지내 보내보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남은 ttc과정과 수업들에, 삶의 모든 만남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ps.    ttc쌤들. 매번 많은 배려를 해주시고 계시다는 것을 매일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전히 약간의 긴장을 하고 있어서 고장 난 것처럼 굴거나 무뚝뚝하고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 정도 들었고, 하나 같이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게 돼서 늘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잘 못하는 것 같아 좀 속상하기도 하고.. 혹시 제가 불편을 드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혹시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괜한 마음도 들어서.. 가까워지기 조심스러운데 그럼에도 매번 잘 대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요가 하시길 바랄게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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