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_ [네이버 지식백과] 페르소나 [persona] (영화 사전, 2004. 9. 30., propaganda)
나에겐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있지만, 지금 나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페르소나는 직장 페르소나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그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당연한 결과이다.
직장에 있을 때 나는 최대한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예외 상황이 생기면 긴장이 앞선다. 덕분에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간혹 독특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번뜩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외부 세계에 꺼내어놓는 일은 거의 없다. 일 특성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하면 질서에 묻혀가려 하고, 주위의 이야기를 따라가려 하고, 상사의 의견에 동조하려 한다. 덕택에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곳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관례와 관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직장에 있으면서 내 안에 있는 장난기가 발현되는 일도 거의 없다.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은 가지만,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드러내는 일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주관적인 생각 하나 갖는 것에도 망설여지고, 과연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를 가진 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하게 됐다. 사회 초년생 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점점 수동적인 기계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생각과 상상들을 하지만, 모두 공상에서 끝이 난다. 나를 드러내는 일은 이제 어색한 일이 되었다.
가면, 인격,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외적 인격, 가면을 쓴 인격,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페르소나의 다른 이름들이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그리 긍정적인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나의 한 ‘부분’이었던 역할이 나의 ‘전체’가 되려고 한다. 나는 원치 않는데, 내 의지와 생명 본능을 무시하고 번성하는 암세포처럼 나를 모조리 갉아먹으려 한다. 사회적 역할에 잠식되어간다. 나의 근간을 뒤바꾸고, 나의 단면, 페르소나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가면은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나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도대체 나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씁쓸하다.
어린 시절 활기찼던 나의 모습을 본지 오래이다. 어떻게 가면을 벗어야 하는지, 가면을 벗은 내 원래 얼굴은 어떤 모습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순례길을 걸으며 나를 되찼았었는데, 또다시 일터로, 직장으로 복귀하고 반복되는 생활 하다 보니, 또다시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순례길을 다녀온 후, 순례길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을 담은 책을 곧바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모든 것들을 되살리기 위해 얼마 전 다시 그 책을 펼쳐 그때 새겼던 문구를 다시 읽어보았다.
말이나 분류표로 세상을 덮지 않을 때
잃어버린 감각이 삶에 되돌아온다.
삶의 깊이가 되돌아온다.
자기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무엇이 내가 아닌가'를 아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가 저절로 나타난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_ 에크하르트 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