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편집하는 일
우리의 뇌에는 중뇌에 위치한 ‘흑질’이라는 특정 부위가 있다. ‘흑질’에서는 운동에 꼭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뉴런)가 정상적으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신경세포(뉴런)가 서서히 소실되고, 느린 운동, 근육 떨림과 강직, 자세 불안정 등의 증상으로 이어지는 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병은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 퇴행성 질환으로, 치매 다음으로 흔한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이다.
최근 파킨슨병에 대해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생명공학 연구 혁신 센터의 스호러 이사자더-나비카스 교수 연구팀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병의 원인을 밝혔다는 내용의 논문을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실은 것이다.
논문의 핵심 내용을 쉽게 요약하면 환자의 90~95%를 차지하는 '산발적 파킨슨병‘이 뉴런에 생긴 미토콘드리아 폐기물의 처리를 제어하는 신호 이상에서 비롯된다는 게 핵심이다. 이 경로가 막히면서 미토콘드리아 손상 폐기물이 과도히 쌓이게 되고, 뉴런이 사멸하면서 파킨슨병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결국 폐기물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그런 짓궂은 병에 걸린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어떨까.
인간은 문명과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폐기물을 만들어내면서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그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하루를 지새워도 모자를 거다. 확실한 건 인간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게 일을 벌이고,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인류가 인지 혁명을 맞이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떨까.
개인의 일상에서 온갖 사건들로 빗어지는 정신적 노폐물은 잘 처리되고 있을까. 나는 썩 잘 관리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 묵혀두거나 망각하는 법을 택하고 있다. 시간이 약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도 일관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얽혀있는 실타래처럼 온갖 사건들로 나도 모르게 뒤죽박죽 된 정신과 마음을 잘 정리하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여전히 찾고 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개인의 인생에서 뒤얽혀있는 사건들을 긍정적으로 편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인생 편집자인 샘이다. 굳이 큰 정신적 질환을 앓지 않아도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샘이다. 독립출판도 좋지만, 능력 있는 편집자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지나친 편견이 사라져서 그들의 덕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파킨슨병의 원인에 대한 논문의 교신저자 이사자더-나비카스 교수는 "배가 부르면 뇌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오는 것처럼 우리 몸은 항상 적절한 신호로 제어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구든 나의 뇌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불필요한 폐기물이 지나치게 쌓인다면 분명 탈이 나기 마련이다. 위험하다는 신호가 끊기기 전에 그 신호가 위급 신호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그러한 시그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