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돈이 최고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아니, 더 솔직히 꽤 많다. 돈을 밝히는 게 미덕이 아니라는 인식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쉬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최고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최고란 말인가. 지금은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철학의 시대가 아니다. 수많은 현자와 학자, 철학자들의 고결한 사상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시대다. 냉엄하지만 현실이다.
사실 돈이 넉넉히 있으면 안 좋을 건 또 뭔가. 돈이 많으며 많을수록 좋다는 말에는 조금 망설일 수 있지만, 꽤나 넉넉히 있다면 분명히 나은 처지의 삶을 살 수 있는 건 확실하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교훈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돈과 권력, 명예만 좇는 인생의 끝에는 늘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시련과 타락, 파국이 있을 뿐이다.’와 같은 게 참 많다. 그런데 사실 그건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하나의 교훈일 뿐이다. 소수의 이야기.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일부일 뿐인 이야기일 뿐이다. 솔직한 말로 내 주변을 아주 대충 쓱 훑어만 봐도 돈이 많아서 파국으로 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턱 없이 부족해서 고난과 수난을 겪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단순 예로 1년에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죽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가. 굳이 세계를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런 일은 흔하다. 최근에 적잖은 충격을 준 뉴스 기사를 봤다. 어떤 노숙인 한 명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서 먹는 cctv영상이 캡처 돼서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돈을 만지는 사람이 문제다. 다시 한번 솔직하게 말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소득 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걸 극복하려고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개혁하고 혁명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그런 사람들 조차 실패한 일을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뭘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당장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세상에 관심을 두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낭만을 지키며 살아내야 한다. 어쩌겠는가. 일반 소시민일 때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성실히 자신만의 밭을 일구어 적당히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철학은 고상한 무엇이라기보다 ‘습관의 하잖음, 삶의 심오한 의미의 전적인 부재, 부산스러운 일상의 어이없음, 고통의 무용함’을 극복할 실전 무기 창고이다.
또 마음에 안 드는 정당과 정치인들 뿐이라도 투표를 해야 한다. 도저히 한 표조차 주기 싫은 사람들 뿐이라도 투표를 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 아둔한 선택보다 미련한 방관이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