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으로써 내가 된다.
나는 옛날부터 물건을 잘 버리지 못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왜인지 버리지 못했다. 물건에 정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 그중에서 특히 대입 공부와 관련된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수험생활이 끝난 지 8년이 넘어가던 해까지 집에는 아직도 수학의 정석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릴 때부터 학력에 대한 미련이 컸다. 장남으로써 부모님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컸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많이 했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더더욱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자식들은 누구보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나에게 공부와 관련된 것들은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미련이 가장 많이 담겨있는 물건들이라 더욱더 버리지 못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입시 준비를 하던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전공 서적을 버리지 못했다. 과거의 내 삶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미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들이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계속해서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던, 버리지 못하던 책들을 모두 버렸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만나던 친구와의 대화 일수도, 아니면 읽고 있었던 책 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들을 버림으로써 나는 조금 더 가볍게, 나답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버리는 것은 무조건 –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버리다 보면 지금의 내가 버리지 못했던 것이 –였음을 알게 되곤 한다. 버림으로써 +가 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탈 자재해지리라.”
임제록에 나오는 문구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한 것이든, 원하지 않은 것이든, 잃는 것이 두려워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 너무 많은 것을 구겨 넣어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키려 한다.
하지만 지킬 것이 너무 많으면 지키다가 지치게 된다. 버리기 너무 힘들다면, 억지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버릴 수 있다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 또한 내가 나다워지는 방법이 될 것이다.
버릴 수 있을 때가 온다.
물건도, 사람도.
그때가 되면 상처 위에 굳은 딱지가 떨어지듯이
아무렇지 않게 떼어낼 수 있다.
그러니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긁어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