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이상적일 것만 같았던 똥강과의 연애는 훨씬 현실적이었다. 아니, 현실을 외면한 이상은 무책임하다는 것을 똥강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이 무책임함은 나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는 조금 멀리 내버려 둔 채 이상을 쫓았고, 이상을 위한 투자라는 명목 아래 내 삶은 소모적 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자, 나는 다시 열등감 가득했던 옛날의 못난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은 모습이 되었다. 옛날에는 열등감을 인정했지만, 이번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다. 현실의 내 모습에 인지부조화가 나타났고, 결국 못나게도 내 아픔의 원인을 똥강 탓을 해버린다.
탓하는 건 쉽고, 책임지는 건 힘든 거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순간은 내 삶에 하나의 커다란 터닝포인트였다. 이때 똥강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아가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은 더욱더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상만 쫓다가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못난 나는 똥강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똥강은 나에게 중요한 삶의 방향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의 연애 내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통해 똥강이 치유받고 성장하길 바랬지만, 오히려 치유받고 성장하며 이 과정에서 똥강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정적이고 똥강은 불안하다는 판단에 우리 관계의 상하를 나누었다. 인간만이 가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불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오만하게도 나는 불안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똥강은 자신이 불안이 큰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나는 내가 불안한지도 모르는 바보였던 것 같다. 똥강은 언제나 자신의 그림자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우리의 연애에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똥강보다 사려 깊지 못했고, 불안에 휘둘려 폭력적이었으며, 더 이해받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