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되는
살다보면 어떤 경험들은 삶의 기준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비교의 잣대가 된다. 내게는 똥강이 기준이 되었고, 인문학 모임이 기준이 되었다. 똥강이란 사람은 나에게 대화가 통한다는 기준이, 인문학 모임은 존중에 기반한 관계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나는 나를 혐오했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결과는 현재의 내 모습이었고, 나는 이 결과와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혐오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과거에 미련이 없었고, 아무리 과거에 좋았더라도 내가 혐오하는 과거의 일부인 친구들은 없어도 괜찮은 존재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연스레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굳이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연락하고 지내는 오래된 친구가 없었다. 군 제대 이후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는 군대에서 만난 후임이었다.
스스로를 혐오하기에 겉으로는 웃으며 잘 지내더라도 속으로는 냉소적이고 시니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르바이트 등 이런저런 일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나에게 선의로 다가온 사람들에게도 속으로는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더 외롭게했지만, 당시에는 외로움도 아픔도 다 스스로가 못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을 필요로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갈망했다. 그래서 스스로 못났다가 정의한 나 자신을 가지고 독서모임 이라는 것에 나간다. 독서모임은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 말에 반박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없이 끝까지 이야기해 본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하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걸 처음 깨달았다.
독서모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한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심도있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인문학 모임은 멤버 변화 거의 없이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다. 이 1년은 죽는 순간 돌이켜봤을 때도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의미있던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3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부모님보다 1년간 일주일에 3시간을 함께한 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나를 보여주었다. 나에게는 일주일 중 이 3시간이 가장 자유롭고 나다웠다.
이 모임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법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내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모임의 멤버들은 내 삶에 은인이고, 속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였다.
문제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게 됐다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말이다. 그리고 똥강도 그중 하나였다. 내 무의식은 알게 모르게 내 표현에 묻어났다. 이래저래 비교당하는 삶을 살며 비교는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아닌 비교는 관계에 신뢰가 아닌 상처를 만들었고, 이 상처는 우리 연애 내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이 상처가 회복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