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눈이 반짝일까?
“혹시 메일 확인하셨나요?”
“지원하신 그림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축하합니다!”
“전시 진행을 위해 그림 원본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7년 겨울, 태어나 처음 그림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그 당시 나는 화학과를 졸업하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펙을 쌓기 위해 영어 공부를 했고, 자기소개서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공모전을 찾았다. 처음에는 취업에 필요한 공모전을 찾다가, 자격요건이나 참여기간이 맞지 않아 참여 분야의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 보니 취업과 전혀 관련 없는 예술분야까지 오게 된 거였다.
내 입장에서 그림 공모전은 참여방법이 단순했다. 스케치북과 연필만 있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고, 결과발표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처럼 예술분야를 몰라서, 겁이 없었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어 화려한 그림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재료 없이 스케치북과 모나미 붓펜 한 자루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완성하고 제출하기까지 총 3일이 걸렸다.
당선 연락을 받은 이후, 전시 준비를 진행했다. 전시 장소는 신도림 역 안에 있는 작은 예술공간이었다. 공간이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시민들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소박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예술을 좋아했다. 지하철이나 다리 위를 거닐 때 예술이 주는 응원으로 힘을 얻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내게는 더 특별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문득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화려한 작품 속에서 붓펜으로 그린 투박한 그림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때마침 주최 측에서도 전시 지킴이가 필요했던 상황이라 전시 동안 함께하기로 했다.
전시 첫날, 전시 지킴이로 준비된 테이블에 앉았다. 전시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었다. 지하철을 오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번씩 힐끗 쳐다봤다. 그 눈빛은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 혹은, 들어가도 괜찮은 곳인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한 아주머니가 전시장에 들어왔다. 첫 관람객이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전시된 작품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검은 붓펜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곁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심장이 찌릿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공모전에 제출한 그림의 주제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그림 속 주인공은 토익 책을 손에 쥔 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고, 시선은 지하철에서 내리는 직장인을 향하고 있다. 그 시선은 바쁘게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보면서 자신도 그 무리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갈망을 담고 있다. 그림 한 편에는 경계선을 그어 긴 글을 한 편적 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내 그림은 시화라고 볼 수 있었다.
전시 일정이 모두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자기소개서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전공 관련 공모전을 찾고, 영어 점수를 얻기 위해 토익책을 펼쳤다. 취업스터디를 하며 자기소개서를 첨삭했고, 회사가 요구하는 인적성 시험 문제집을 풀었다. 하루는 오랜 시간 함께한 스터디 팀원이 내게 말했다.
“오빠는 취업에 큰 열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림 이야기할 때만 눈이 반짝여.”
다른 팀원도 그 말에 동의했다. 스스로 눈빛을 볼 수 없어서, 반짝거림을 보진 못했지만. 줄곧 전시 때 느낀 그 설렘을 잊지 못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문득 ‘꿈’을 찾으면 이런 기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설렘에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