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격변의 바다를 건너온 배들
벽화 하단부로 시선을 옮기면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19세기 말, 난은 고립된 산골 마을은 아니었다. 벽화 속에는 거대한 돛을 단 전형적인 중국 남부식 정크선과 근대화의 파도를 타고 온 서양식 군함이 나란히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라마 5세 시절, 서구 열강의 압박과 활발한 대외 무역이 공존했던 난 왕국의 전성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화가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그리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이 처한 역동적인 국제 정세를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둔 것이다.
2. 군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신분을 넘는 연심(戀心)
그들의 시선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시선은 바로 '군인들의 시선'인데 어쩌면 이 벽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제복을 입고 엄숙하게 행진하던 군인들의 눈길이 닿는 곳은 화려한 복장을 한 신분이 높아 보이는 여인들이 아닌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무거운 물동이를 지고 있는 한 여인이다.
이것은 화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시선의 반전'으로 생각된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복장을 한 상류층 여인들은 그저 구경꾼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정작 군인의 뜨거운 시선은 가장 낮고 평범한 곳에 머물게 함으로써 신분의 벽보다 강렬한 '사람의 이끌림'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물동이를 지고 있으나 전혀 기죽지 않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역시 군인들의 무리에 닿아 있음을 본다. 거리를 두고 이어진 그 시대 그 들만의 스파크! 그 찰나의 포착이야말로 왓 푸민 벽화가 가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3. 난 스타일 주택과 일상의 온기
벽화 속에는 내가 난에서 자주 머물렀던 '난 스타일 주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지어진 목조 가옥, 그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여인들의 모습은 15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평화로움을 전하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 마당 한구석에서 장난을 치거나 어른들의 눈을 피해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벽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금기를 넘나드는 솔직함: 왓 푸민의 벽화는 성(性)적인 묘사에도 주저함이 없다. 남녀의 애정 행각이나 은밀한 신체 부위의 노출 등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성을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명력의 일부로 보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베틀에 앉은 여자와 무언가를 알려 주고 있는 듯한 여인,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한무리의 여인들의 복장에서 일상에서 여인들이 상의를 입지 않고 생활하였음도 알 수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진 그들의 복장들에서 마치 그 시절 속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4. 목의 혹과 갑상선 질환: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다
사진 속 인물들의 목이 불룩하게 묘사된 것은 심미적인 표현이 아니라, 당시 실제 존재했던 '갑상선종' 환자들의 모습을 화가가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지리적 원인: 태국 북부 산간 지역인 '난'은 과거에 요오드 섭취가 부족하여 갑상선 질환이 매우 흔했다고 한다.
화가의 시선: 난 부아 판은 이를 부끄러운 질병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매일 마주하던 이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벽화에 담았다. 이는 성스러운 사원 벽화에 인간의 고통과 일상을 가감 없이 투영한 파격적인 사실주의라 할 수 있다.
4.1. 산 족과 검은 개
벽화 곳곳에 등장하는 검은 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난이 성립되기 전 난 지역은 루와족의 영토였다. 치앙마이가 번성하여 난을 합병할 당시 루와족이 검은 개를 끌고 성문으로 들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루와 족은 검은 개와 관련하여 독특하고 중요한 풍습이 있는데 검은 개는 액운을 막고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영적인 존재로 여겼다. 또한 검은 개가 사후의 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루와 족에게 검은 개는 마을을 지키는 영적 방패이자 이승과 저승을 잇는 길잡이와 같은 존재였다.
4.2. 문신과 짊어진 바구니: 종족의 표식
문신: 사진 하단과 중단 사내들의 다리와 몸을 뒤덮은 문신은 당시 란나(ล้านนา, Lanna) 및 타이 르(Tai Lue) 남성들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성년식의 통과의례이자, 숲속에서 맹수나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신앙적 의미가 컸다.
짊어진 바구니: 어깨에 끈을 걸어 등으로 짊어지는 형태의 바구니는 카무족(ขมุ, Khmu)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평지 거주민들과는 다른 그 들만의 독특한 운반 방식과 도구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난이 얼마나 다양한 종족이 어우러져 살던 곳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뻐’라고 불린 그들: 당시 도시 외곽의 산림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뻐’라고 불렀는데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라기 보다 도시공간과 대비되는 산지, 산림 공간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종족분류 개념과는 다른 전통사회에서 공간 인식과 생활 방식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는 말이다.
5. 복장의 무늬: 직조 기술의 자부심
여인들의 치마(파퉁)에 새겨진 가로줄 무늬와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은 난 지역의 주류였던 타이 르 족의 뛰어난 직조 기술을 반영한다. 색채와 문양의 조합만으로도 그가 어느 마을 출신인지, 어떤 신분인지를 알 수 있었던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연구 포인트]
'뻐(เปอะ)'는 '피(ผี, 정령/귀신)' 그리고 '빠(ป่า, 숲)'라는 두 개념 모두와 깊은 문화적·언어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태국 북부(란나)와 난지역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이 세 단어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1. 공간적 연결: '빠(ป่า, 숲)'
과거 란나 사회에서 '빠'는 단순히 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라, 국왕의 통치력(법과 질서)이 미치지 않는 '문명 밖의 공간'을 의미했다.
도시(므앙)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 '빠(숲)'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존재였고, 그들을 지칭할 때 그 공간의 특성을 담아 '뻐'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2. 영적 연결: '피(ผี, 정령, 귀신)'
전통적으로 '빠(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피(정령)'라고 믿었다.
따라서 숲에 사는 사람들은 '피'와 소통하거나 그들의 보호 아래 사는 존재로 여겨졌다. 치앙마이 대학교 란나 연구소 등의 인류학적 관점에 따르면, '뻐'라는 호칭 안에는 '숲의 정령(피)과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3. 언어적 중의성
'뻐'는 북부 방언으로 '등에 짐을 지다'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산에서 채집한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 어깨에 매고 내려오던 산지 거주민들의 생활 양식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빠(장소) + 피(영적 상태) + 뻐(외형적 특징)'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산림 지역 사람들을 일컫는 포괄적인 대명사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결론적으로 '뻐'는 특정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정령(피)이 지배하는 숲(빠)에서 짐을 지고(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도시 중심적인 공간 인식이 낳은 단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벽화 한구석, 목이 불룩하게 솟은 사내들이 짐을 지고 걸어간다. 요오드가 부족해 갑상선 혹을 달고 살아야 했던 당시 산골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화가는 외면하지 않고 붉은 벽 위에 정직하게 기록했다. 그 곁을 달리는 검은 개 한 마리와 사내들의 다리에 새겨진 빼곡한 문신들... 150여년 전 난의 골목은 이토록 아프고도 생생한 삶의 열기로 가득했을 것이다. 신성한 사원의 벽이 가장 낮은 곳의 이웃들을 품어 안는 순간, 종교는 비로소 인간의 온기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