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건너는 언어와 신분의 바다
제5장: 영원한 밀어, 뿌만 야만(ปู่ม่านย่าม่าน): 웃음으로 건너는 언어와 신분의 바다
1. 붉은 벽 위에 새겨진 이방의 두 영혼
법당의 붉은 벽면, 세월의 흔적이 깃든 그 한구석에 왓 푸민의 심장이라 불리는 '뿌만 야만'이 서 있다. 불교 사원 벽화라는 맥락 안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그림이다. 이 장면은 자타카 이야기의 서사적 흐름 속에서 필수적인 사건을 묘사하지도 않고, 교훈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이 왓 푸민 벽화 전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이유는, 이 장면이 이야기의 일부라기보다 감정 그 자체를 정지된 순간으로 포착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는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바짝 기울인 채, 남자는 여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듯 고개를 숙이고 있고, 여인은 그에 응답하듯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있다. 두 인물 사이에는 신체적 접촉은 없지만, 거리감은 극도로 좁혀져 있다. 이 미묘한 거리와 시선의 교차는 말보다 강한 친밀감을 만들어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읽어내게 한다.
이 장면이 더 특별한 것은 이 지역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 위에 씌여진 ‘뿌만야만’이라는 란나문자는 ‘만’ 즉 버마 혹은 그 영향권에 속한 이방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뿌는 남자, 야는 여자를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당시 사내들에게 문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전쟁과 재해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주술적 방패이자 강인함의 상징이었다 할 지라도 남자의 상체를 뒤덮은 붉은 문양의 문신은 꽤 강렬하다. 정수리에서 하나로 올려 묶은 머리, 그 부분을 접은 천으로 둘러 묶은 것 등은 영락없는 미얀마식이다. 그러나 허리에 두른 천은 미얀마식이라기보다는 타이야이(샨)족들이 더 즐겨했던 스타일이다. 이는 이미 미얀마와 타이야이 그리고 란나의 문화적 교류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여자 역시 난 지역의 전형적인 여성의 복식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의 귓속말을 받아내는 여인은 격식 있는 검은 녹색 계열 재킷과 '타이 르' 족 특유의 정교한 가로줄 무늬가 들어간 ‘파퉁’을 입고 있다. 똥 혹은 떡(โต้ง/ต้อก)이라 부르는 귀걸이와 흔들리는 장식을 한 머리 꽂이 등, 당시 난 지역에 유행했던 버마풍의 세련된 복식(홈만, ห่มม่าน)을 한 이 여성의 모습은 아마도 난 왕국의 꽤 높은 신분을 지닌 상류층 여성임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2. 닿을 듯 말 듯, 그 찰나의 긴장감이 주는 위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의 손이 여인의 어깨 근처에 머물고 있다. 덥석 잡는 것도, 멀리 떨어지는 것도 아닌 그 아슬아슬한 거리. 그것은 상대를 향한 깊은 존중이자, 신분이나 계급의 벽을 의식하면서도 차마 멈출 수 없는 연심(戀心)의 표현이다.
문신을 새긴 이방인 사내와 잘 차려 입은 상류층 여인. 화가는 이 파격적인 배치를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거대한 서양 군함이 밀려오고 국경이 요동치던 그 혼란의 시대에도, 결국 사람을 살게 하고 세상을 버티게 하는 것은 붉은 벽 뒤에서 나누는 이 작은 속삭임이었다는 것을.
3. 그들의 사랑
이방인.
화가가 선택한 이방인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화가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감정을, 사원이라는 종교적 공간 안에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도시의 주체가 아닌 ‘타자’의 몸을 빌려 표현했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로 설정됨으로써, 사회적 규범과 도덕의 시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뿌만야만’은 단순한 연애 장면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전략적 이미지가 된다.
또한 이 장면은 다른 벽화들에 비해 인물의 크기가 유난히 크고, 배경 요소가 거의 제거되어 있다. 건축물도, 군중도, 서사적 단서도 없다. 이로 인해 관람자의 시선은 오직 두 인물과 그들 사이의 긴장감에 집중된다. 이는 이 장면이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그림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19세기 난 지역 사회가 사랑과 욕망, 친밀함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기록이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사랑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가 선택한 가장 세련된 우회적 표현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