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붓 끝에서 깨어난 19세기의 기억

by 태국학연구소

제3장: 붓 끝에서 깨어난 19세기의 기억


이제 법당의 중심에서 고개를 돌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색채의 향연으로 시선을 옮긴다. 왓 푸민의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난(น่าน) 왕국의 황금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1. 난 부아판의 시선

이 경이로운 세계를 창조한 이는 화가 난 부아 판(หนานบัวผัน)이라고 한다. 그는 타이 르(ไทลื้อ, Tai Lue) 족 특유의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붓끝에 담아냈다. 왓 푸민의 벽화가 다른 사원들과 달리 유독 인물들의 몸짓이 역동적이고 시선이 자유로운 이유는, 화가가 교조적인 형식을 넘어 자신의 이웃들이 가진 생명력을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다.


2. 붉은 흙이 빚어낸 영원한 생명력

벽면 전체를 감도는 강렬한 붉은 기운은 이 사원의 심장 박동과 같다. 화가는 난 주변의 흙에서 얻은 천연 안료를 사용해 이 색을 빚어냈다. 화학 안료의 자극적인 화려함 대신, 시간이 흐를수록 벽체 깊숙이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내는 이 붉은색은 150여년 전 난의 태양과 흙, 그리고 사람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3. 하늘의 이별: 원시적 슬픔이 머무는 열반

벽화의 가장 높은 곳, 부처님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발길이 무겁게 멈추는 지점이 있다. 바로 부처님의 마지막 순간인 열반의 장면이다. 흔히 성화(聖畵) 속의 죽음은 고요하고 엄숙하게 그려지기 마련이지만, 왓 푸민의 화가 난 부아 판은 그 엄숙함 대신 지독하게 인간적인 풍경을 선택한 듯하다.


꺼이꺼이, 벽을 타고 흐르는 울음: 제자들은 온몸으로 '원시적인 울음'을 울며 스승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손동작과 뒤틀린 몸짓에는 성자를 보낸다는 거창한 종교적 의미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비명이 담겨 있다. 이 '원시적 울음'이야말로 왓 푸민의 벽화가 박제된 종교 예술을 넘어 우리와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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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와 누운 자의 표정: 화가는 부처님의 표정에서도 미묘한 대조를 이루어 내고 있다. 앉아서 법을 전하실 때의 부처님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인자한 스승’이었다면, 열반에 드신 부처님은 모든 고행과 인연의 짐을 내려놓은 ‘평온한 인간’의 모습이다. 낡아 버린 벽화는 비록 부처님의 얼굴 표정을 읽어 낼 수는 없지만 주변의 그 소란스러운 통곡과 대비되는 부처님의 일상과도 같은 자태에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 주고 있다.


4. 지상의 풍경: 엿보는 눈길과 삶의 스냅샷

이제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면, 부처님의 신성한 이야기 사이사이로 난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이 비집고 나온다. 이곳은 더 이상 먼 인도의 이야기가 아닌 150여년 전, 바로 이 사원 밖을 걷던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인 것이다.

엿보는 시선, 그 은밀한 생동감: 이 벽화속에는 수많은 시선들이 있다. 나의 시선역시 그 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따라가 본다. 마치 숨구멍을 틔워 주는 것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담장 너머를 궁금해하는 아이들, 누군가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사내의 시선은 정형화된 구도를 깨뜨리고 그림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특이한 시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화가가 이름 없는 주변인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이 건네는 질문: 그림 속 인물들은 결코 한곳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신분과 종족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때로는 그 눈동자가 벽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와 정면으로 마주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 벽화 속 사람들이 가끔 150여년의 세월을 건너 내게 묻는다,


“당신의 세상은 별일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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