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하늘과 땅을 잇는 배, ‘왓 푸민(วัดภูมินทร์)’
1. 경계에 서있는 씽(สิงห์, Singha, 씽하)
사원 마당에 들어서면 법당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집 한 채만 한 크기로 솟아오른 거대한 사자상, ‘씽(สิงห์, Singha, 씽하)’이다. 사실 객관적인 크기로만 따지자면 법당 입구의 ‘낙(นาค, naga, 나가)’보다 이 사자상들이 훨씬 거대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낙’이 ‘씽’보다 더 크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것은 이들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자상은 사원의 경계 밖에서 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으르렁거리는 파수꾼이다. 쑤완나품 공항의 '도깨비'들이 성문을 지키듯, 이 ‘씽’들은 압도적인 크기로 세속의 번뇌를 입구에서부터 차단한다. 그들의 존재감이 큰 이유는 우리가 아직 '바깥세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2. 사원을 떠 받치는 ‘낙(นาค, naga, 나가)’
사자상의 위엄을 지나 법당 계단 앞에 서면, 비로소 그 기묘한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사자상은 이제 내 등 뒤에 있고, 내 눈앞에는 법당의 기단부터 지붕 아래까지 길게 몸을 뻗은 ‘낙’이 나타난다.
사자상이 외부를 감시하는 파수꾼이라면, ‘낙’은 이 사원이라는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실질적인 몸체다. ‘낙’의 꼬리는 법당 뒤편으로 길게 이어져 사원 전체를 관통한다. 법당이 ‘낙’의 등 위에 얹혀 있는 형상이기에, 안으로 들어갈수록 ‘낙’이 사자상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거대한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다.
‘낙’은 수호를 넘어 운송의 의미를 담는다. 이 사자가 지키는 성소(聖所)를 지상에서 천상으로 실어 나르는 거대한 배의 엔진, 그것이 바로 왓 푸민의 ‘낙’이다.
3. 시선의 위계: 씽하(씽)에서 나가(낙)로, 그리고 부처에게로
사원 문턱을 넘기 전, 우리는 시선의 위계를 경험한다. 가장 바깥에서 포효하며 세속의 잡념을 끊어내는 ‘씽’, 사자상의 거대함은 우리를 잠시 위축시킨다. 그러나 그 위압적인 파수꾼을 지나 법당 계단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땅을 기며 법당 전체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낙’의 몸통으로 옮겨간다.
이때 묘한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사자상은 그저 밖을 지키는 존재일 뿐이지만, ‘낙’은 내가 머물 이 성소(聖所)와 한 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자상, ‘씽’이 ‘경계’를 말한다면, ‘낙’은 ‘동행’을 말한다. 사원 전체를 자신들의 몸 위에 태우고 고해를 건너가는 이 거대한 영물의 존재감은, 어느덧 사자상의 크기를 압도하며 우리를 법당 안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는다.
4. 사방의 시선, 두려움이 자비로 변하는 찰나
묵직한 목조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서면, 법당의 내부는 연꽃문양으로 아름답게 채색된 천장을 비롯하여 12개의 티크 기둥이 법당 내부를 받치고 있다.
법당의 중앙에는 네 분의 부처님이 사방으로 나 있는 문 쪽을 향해 앉아 계시는데 구루손불(Kakusandha), 구나함모니불(Konagamana), 가섭불(Kassapa), 그리고 석가모니불(Gautama)이 그것이다.
네 분의 부처님을 마주한 순간, 밖에서의 소란함은 순식간에 정적 속으로 흩어진다.
내가 처음 느꼈던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십자형 구조의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 부처님은 이미 그곳에 계셨다는 듯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을 곳 없는 개방감 속에서 마주하는 네 쌍의 눈동자.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낱낱이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다 보면, 그 강렬했던 시선은 서서히 온기를 띠기 시작한다. 어느 각도에서건 나와 눈을 맞추어 주는 부처님의 배려는, 내가 세상 어디에 있든 결코 혼자가 아님을 말해주는 자비의 다른 이름이다. 씽하의 위엄과 나가의 경외심을 뚫고 들어온 여행자에게 부처님은 그제야 ‘편안해진 눈빛’으로 화답하며, 이제 벽화 속에 담긴 인간들의 이야기를 보라고 나직이 권하는 듯하다.
[작가의 연구 포인트]
왓 푸민의 사면불은 불교 세계관에서 현겁(현재의 겁, Bhadrakalpa)에 나타난(혹은 나타날) 다섯 분의 부처님 중 이미 오신 네 분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1. 왓 푸민 사면불의 정체 (현겁 사불):
이불상들은 과거칠불 중 현겁에 속하는 네 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각 문으로 들어 갔을 때 마주하게 되는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순서이다.
북쪽 문: 구루손불 (พระกกุสันธพุทธเจ้า, Kakusandha): 현겁의 첫 번째 부처님.
동쪽 문: 구나함모니불 (พระโกนาคมนพุทธเจ้า, Konagamana): 현겁의 두 번째 부처님.
남쪽 문: 가섭불 (พระกัสสปพุทธเจ้า, Kassapa): 현겁의 세 번째 부처님.
서쪽 문: 석가모니불 (พระโคตมพุทธเจ้า, Gautama): 현겁의 네 번째 부처님 (현재의 부처님).
보통 북쪽 문(구루손불)으로 들어가서 시계 방향으로 돌며 과거부터 현재의 부처님까지 차례로 참배하는 것이 정석으로 통한다.
또한 법당 중앙의 네 부처님은 모두 동일하게 항마촉지인(ปางมารวิชัย, 빵 마라위차이) 수인을 하고 계신다.- - 동작: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아래로 내려 손가락 끝이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 의미: 석가모니가 수행 중 마귀(마라)의 유혹과 방해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데 "내가 깨달음을 얻었음을 이 땅(지신)이 증명한다"라는 뜻에서 '지신인'이라고도 불린다.
- 상징: 이는 승리, 평화,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의 마음을 나타낸다.
사면불의 수인이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것은, 어느 쪽에서 오는 중생이든 똑같은 자비와 승리의 에너지를 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2. 왜 4분인가.
현재의 완성: 불교 교리에 따르면 현겁에는 총 다섯 분의 부처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 부처님인 미륵불(Maitreya)은 아직 오지 않으셨다. 따라서 사원의 사방 문을 수호하며 현재까지 인류를 인도한 네 분의 부처님만을 모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팁 ! 힌두교의 사면불(브라만)과 혼동 주의
방콕의 에라완 사당 등에 모셔진 사면불(Phra Phrom)은 힌두교의 창조신 브라만을 의미하지만, 왓 푸민의 사면불은 엄연히 불교의 네 부처님을 각각 별개의 불상으로 조성하여 등을 맞대게 한 것이란 사실~!
그러면 다섯 번째 '미륵불'은 자리가 없을까?
현겁의 다섯 부처님 중 마지막인 미륵불(พระศรีอาริยเมตไตรย, Maitreya, 프라씨아리야멧따뜨라이)의 자리가 비어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종교적·상징적 이유가 있다.
- 기다림의 미학: 미륵불은 아직 이 세상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부처'이시다. 이미 오신 네 분은 형상(불상)으로 모실 수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분은 형상화하지 않음으로써 인류가 맞이할 희망찬 미래와 깨달음의 완성을 상징적으로 비워둔 것이다.
- 공간의 완성(나 자신): 일부 해석에 따르면, 사면불의 중앙(등이 맞닿은 중심점) 혹은 그 사원을 찾아와 참배하며 수행하는 '중생의 마음'이 미래의 깨달음(미륵)으로 이어질 빈 자리라고 보기도 한다.
3. 미륵불을 대신하는 상징물
비록 불상은 없지만, 왓 푸민 법당 안에는 미륵불의 시대를 갈구하는 상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 천장 무늬: 법당 천장의 정교한 문양들은 불교의 이상향인 도솔천, 즉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계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법당 건축: 사원 전체가 거대한 수미산(메루산)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 구조물 자체가 미래 부처님이 오실 거룩한 장소를 미리 준비해 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치앙마이 대학교 란나 연구소의 문헌들은 란나의 사면불 건축이 우주론적 완성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4. 공양물 (Offering, เครื่องบูชา)
사면불 앞에는 태국 불교의 전통에 따른 정성 어린 공양물들이 놓이는데
기본 3종 세트: 태국 사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으로 각각의 의미가 있다.
향 3개 (ธูป): 부처(Buddha), 가르침(Dharma), 승가(Sangha)의 세 가지 보물을 상징
촛불 (เทียน): 무지를 밝히는 부처의 지혜와 빛을 상징
연꽃 또는 꽃장식 (ดอกบัว/พวงมาลัย):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 순수함을 상징
특별한 공양: 금박 (แผ่นทอง): 참배객들은 작은 금박지를 불상이나 사원 내 상징물에 붙이며 자신의 정성과 기원을 담기도 한다.
음식과 물: 때때로 신선한 과일이나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을 올려 감사의 마음과 공덕을 표현한다.
2026년 현재에도 현지인들은 사면불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며 이 공양물들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