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퇴사하기 전, 센터장님께서 나중에 날이 좋으면 식물을 3가지 이상 키워보라고 하셨다. 화분을 곧잘 죽이는 나로써는 식물 키워봤자 또 시들시들 사라지고 말텐데... 싶었지만 센터장님의 말씀에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4월 초가 되었다. 할머니댁에 갔는데 텃밭에 할머니께서 여러 가지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센터장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나도 뭐 하나 키워볼까... 했더니 할머니께서 화분과 흙, 그리고 상추 모종을 주셨다. 꽃도 키워보라고 주신다고 했는데... 손사레 치며 그건 싫다고 말하며 상추 화분만 받아왔다.
상추의 성장과정이 눈에 보인다. 그 작고 작던 이파리 같은 것들이 이제는 풍성하게 자라났고 화분 사이즈를 넘어서서 곧 따서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 성장과정이 너무 놀라웠고, 이 생명이 너무 귀했다. ‘자라주었구나, 이런 느낌이구나’ 이 초록 생명에 나도 모르게 감사해졌다.
그리고 언젠가 헤어졌던 이씨 성을 가진 남자가 생각났다. 난 기념일에 꽃을 받고 싶다고 언지를 주었고,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념일. 꽃다발을 기대하고 간 내게 그가 준 건 화분 하나였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라고. 남친에게 선물 받았다고 어떻게 인증샷을 찍으라고. 화려하고 작렬하게 핀 꽃이 아니라 이제 고개를 막 내밀기 시작한 화분에 대한 초라함이 내게 너무 크게 부각되었다. 그 당시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남자친구가 잠깐 줄 게 있다고 나와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며, 직장 동료분들에게 “어머, 남친이 왔대요, 뭐 줄 게 있다는데요?” 이렇게 말하고 좋은 내색을 숨기며 나왔던건데... 이 화분을 어떻게 들고가지... 너무 많이 실망했다. 그리고 직장에 들고 같은 사무실 직원 중에 식물을 잘 키우는 분께 혹시 관심있으면 이 꽃도 키워보라고 하였다. 그 분은 좋아하며 그러하겠다고 했다. 화분도 생명인데, 내 마음에 안든다고 버릴수도 없었기에 그냥 다른 사람 줘버리고 말았다.
그 날이 나는 조금 전에 생각났다. 남자친구가 내게 화분을 줬던 게... 이런 아름다운 때문이구나. 비단 꽃다발은 비싸고 화분은 싸니까 싸게 먹히는 거 들고 찾아왔던 게 아니구나. 그 사람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내게 꽃을 준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헤어진 그 사람을 약간 무명의 누군가로부터 변호하게 된다. 레옹이 왜 집을 나설 때 한 손에는 화분을 들고 있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 원예라는 것이 심리적 안정감이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에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기분. 그런 몇 가지를 느꼈다. 내 화분에, 내 식물에 조금 더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지. 뭐 그런 생각까지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