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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un 05. 2020

3박 4일의 휴가

백수라서 휴가가 필요하겠느냐마는 3박 4일 아버지 덕분에 같이 쉬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3박 4일 휴가를 받아서 하루는 충주 할머니댁, 하루는 정동진 호텔, 하루는 양수리 우리 동네에서 휴가를 보냈다. 지난주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 휴가 기간 동안 비가 온다고 해서 날씨가 쌀쌀할까봐 긴 팔을 챙겨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매일이 올해들어 최고로 더운 날씨를 갱신했다. 더위에 푹푹 익어가며 동해에 가놓고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고 호텔 안에서만 있었다. 그것도 그런데로 재미가 있었다. 이것저것 보고 온 것도 좋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3박 4일 동안 가족들과 주고 받은 대화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취직하지 말아라.    


취직하지 말아라. 아무데나 이력서만 쓰면 당장 나오라고 하는데. 그건 속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러는거고.

할머니도 너 보고 있으면 멀쩡해보이고, 아픈 사람처럼 안 보이는데,

네가 아픈 거 네가 제일 잘 아는거야. 

취직하지 말고, 네 살림살이 잘 꾸리면서 건강하게만 지내. 재미나게 살아라. 

할머니는 너 취직하는 거 싫어. 또 아파서 손녀딸 고통 받는 거 싫으니까. 

마음 편하게 살아라.     


아버지와 딸의 대화1

아버지: 양수리 4년 정도 살아보니까 어떠니?

감성돈: “다 좋아요, 차가 없어서 교통수단 불편한 거 빼고는. 다 좋아요.”

아버지: “그럼 이번에 중고차 하나 뽑아줄게. 차 끌고 다녀.”

감성돈: “...음... 저, 백수라서 끌고 다닐데가 없는데요?”

아버지: “네가 필요하면 사는 거지 뭐, 너 서울에 북카페 가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러 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감성돈: “2~3년 후에, 북카페 차리면 그때 차 살게요. 지금은 내가 게을러서 안 돌아다니거나 택시타는거지, 그리고 공황장애 직면훈련도 해야하고. 차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진짜 필요한 일 생기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알았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2

계획대로라면 6월달부터 유료로 돈을 내고 주식 전문가와 함께 내 힘으로 직접 주식 투자를 시작하기로 했다. 

감성돈: “아버지, 3개월만, 아니 한 달만 그 일정 미루면 안될까요? 진짜 돈으로 매수하고 매도해야 하는데 아직 겁이 나요”

아버지: “나는 네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하게 하고 싶지 않아. 다만 용돈벌이라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으면 바라기 때문에 주식 얘기 자꾸 하는거야. 차일피일 미루는 거 보면 속이 답답해“

감성돈: ”저도 아버지 뜻을 알아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요. 하루하루 주식창만 바라보며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불 보듯 뻔하니까. 조금만 마음이 단단해지면 그때 시작할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아버지: ”알았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3

주식 돈으로 사고치고 나서 만난 부녀의 대화

감성돈: ”아부지, 이렇게 비싼 호텔에서 자도 돼요?“

아버지: ”너처럼 주식 돈 찔끔찔끔 빼서 쓰고, 어디다가 썼는지 기억도 못하게 쓰느니,

이렇게 돈을 쓰는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의미없이 쓰는 돈 말고, 값지게 쓸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의지를 다져봐“

감성돈: ”아....네, 아버지, 이번에 제가 주식 돈 손 대서 실망하셨죠? 믿음이 깨졌죠? 이제 딸내미 못 믿겠죠?“

아버지: ”많이 실망했지, 그런데 말이다. 난 또 너를 믿을거야. 그리고 또 믿을거야“ 

감성돈: ”...죄송해요(고개 돌리고 한 방울 또르르), 또다시 믿어주신다는 말에 감사해요“     


3박 4일 동안 가족과 깊은 얘기를 주고 받았다. 날 믿어주고, 날 알아주는 가족들이 여기 있는데, 난 너무 멀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날들이 되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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